자율성과 상호존중 (6)
자율성과 상호존중 (6)
  • 문창룡
  • 승인 2012.05.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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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의 이야기를 연재한 후로 S의 집에는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S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S의 부모가 연재된 이야기들을 스크랩하여 읽으면서 S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며 자녀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S의 이야기가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자율성과 상호존중의 관계형성이 자리매김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율성과 상호존중에 대한 관계정립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S의 집에서 일어나는 최근의 일들은 신혼부부 O의 집에도 영향을 미쳤다. O는 S의 아버지 K와 잘 아는 사이다. S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같이 많은 의견을 나눈터라 연재하는 S의 이야기는 O에게 매우 관심 있는 일이었다. O는 S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 결국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드 미스’라 불리던 전문직 여성 O는 신혼생활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아기를 낳는 문제로 고민이 생긴 것이다. O는 결혼하여 임신을 하게 되자 그동안 왕성하던 사회활동을 거의 접다시피 했다. 영화, 패션과 같은 문화생활에 대해 관심도 많았지만 이에 대한 욕구는 채울 수도 없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각종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L의 이야기는 O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더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 같았지만 자기만은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다.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O의 억제된 자율성에 조율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까운 부모마저도 ‘결혼이 그런 거지’식의 반응을 보이면 괜히 결혼한거 아니냐는 후회도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벌써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형제가 많아야 좋다느니, 우리 부모님도 자녀를 많이 두었으니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할 때는 자신이 아기나 낳으려고 시집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O는 그럴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답답했다.

L을 곁에서 지켜봐 온 O에게 육아는 너무 부담스런 일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S의 행동에 대해 ‘귀여운 것 아니냐? 남자는 그렇게 커야 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몇 달 후 엄마가 되어야 할 처지에서 S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그런데 첫째 아기를 낳기도 전에 둘째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편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남편의 생각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L을 통해서 대부분의 육아가 여자의 몫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갈수록 자신의 삶이 없어져 버릴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생겨났다. 이처럼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남편과 아이를 더 낳고 싶어하지 않는 아내의 욕구충돌 또한 쉽게 조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O에게도 S처럼 자율성의 조율이 필요하다. O의 억압된 자율성이 조율되지 않으면 O는 임신으로 인한 우울증과 그로 인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교적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가정 풍속과 임신 육아에 대한 전통은 여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되어 있어 O의 자율성과 상호존중에 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 지금 O의 집에 당장 필요한 것은 남편의 결혼생활과 육아에 관한 바른 인식이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선배들을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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