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길
오래 사는 길
  • 이동희
  • 승인 2012.05.14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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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존경하고 따르는 문단 선배께서 즐겨 쓰시는 조크가 있다. ‘죽지 않고 오래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숨만 쉬면 되는데 게을러터진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여 죽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의아해 했으나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진리를 담은 말이다. 생명은 호흡이다. 그 들숨과 날숨 간에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중단 없이 숨쉬기를 계속한다면 죽음은 피할 수 있다.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명상수도원을 운영하는 틱낫한(Thich Nhat Hanh.釋一行.1926~)스님 역시 호흡 명상법을 강조한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생명력의 본성을 회복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처럼, 호흡이 생명작용의 기본임도 잊고 산다. 공기를 들여 마시는 ‘들숨’에 몰입하고, 내쉬는 ‘날숨’에 전념하는 동안 망상-백팔번뇌가 사라진 자리에 생명에너지가 충만해 진다는 것이다. 역시 문단 선배의 오래 사는 길의 조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경(道德經)에도 오래 사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가 장수한다.’가 그것이다. 도덕경 33장의 원문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가 그것이다. 탄허(呑虛) 스님의 어투를 빌리자면 ‘죽어도 죽지 않는 놈이 오래 사는 놈’이다. 결국, 숨 쉬기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호흡작용을 계속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그런 호흡 작용을 위해서는 ‘죽어도 죽지 않는 길’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도덕경은 친절하게도 그 길을 밝혀준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스스로 아는 자는 현명하며, 남에게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스스로에 이기는 자는 강하며, 족함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고, 그 자리를 잃지 않는 자는 영구하다.’ 그런 삶의 결과가 바로 죽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자가 된다. 그런데 그 길이 매우 지난하다. 누가 과연 이 길을 걸었을까?

도덕경이 제시하는 오래 사는 길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로 여기고 외면하려 하니 탄허 스님께서 이미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을 적시한다. 전인미답이 아니라 전인기답(前人旣踏)이란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사는 사람으로 3대 성인-석가 · 공자 · 예수를 꼽았고, 그 다음으로 한 나라에서 오래 사는 사람으로 이퇴계 선생 · 이율곡 선생 ·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탄허록』104쪽) 그러니 ‘죽어도 없어지지 않고 오래 사는 자’가 세상에 존재함을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없고, 아무나 위인이 될 수 없다. 누구나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없고, 아무나 한 나라의 위인이 되기는 어렵다. 그저 한 가정의 제대로 된 가장(家長)이나, 나 스스로 ‘된 사람[爲人]’이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그 길도 그리 쉽지 않다. 그렇대서 굳이 그 길을 찾으려 한다면 찾지 못할 것도 없다.

‘죽어도 죽지 않는 자가 제일 오래 사는 자’가 되는 길은 偉人(위인)이 되려는 길에서 찾으니 어려운 것이다. 그 길을 사람다운 사람, 爲人(위인)에서 찾는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침 도덕경은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도덕경 67장은 이렇게 제시한다.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있다. 잘 간직하여 이를 보배로 삼는다. 그 첫째는 자비요, 둘째는 검소함이요, 셋째는 감히 천하의 앞장에 서지 않는 것이다. 자비하므로 능히 용기가 있으며, 검소하므로 능히 널리 베풀 수 있고, 감히 천하의 앞장에 서지 않으므로 능히 기량 있는 자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자비를 버리고도 또한 용감하려 하고, 검소를 버리고도 널리 베풀려고 하고, 뒤에서 따르지 않으면서 또한 앞장서려고 하는데, 그러면 죽을 것이다. 대저 자비는 이것으로 싸우면 곧 이기고, 이것으로 지키면 견고하다. 하늘이 장차 이를 구하고자 자비로써 이를 지킨다.”

아하! 죽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길은 큰 사람[偉人]의 길에 있지 않고, 된 사람[爲人]의 길에 있음을 알겠다. 커다란 포부로 천하의 도를 실현하려는데 장수의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자비를 실천하는 길에 있음을 알겠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며, 검소한 생활이며, 함부로 남 앞에 나서지 않으려는 길임을 알겠다.

사랑이 용기 있는 실천이며, 검소함이 자비로운 베풂이며, 남 앞에 함부로 나서지 않으려는 겸손함도 용기다. 이런 미덕 역시 쉼없는 호흡처럼 집중하고 전념하는 삶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한숨 들이마실 때마다 자비로운 용기에 집중하고, 한숨 내쉴 때마다 겸손한 마음가짐에 전념하는 것이 바로 장수에 이르는 길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길은 자비와 검소함과 겸손을 호흡하는 데 있음을 알겠다.

이동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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