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 진화한다
학교폭력이 진화한다
  • 소인섭기자
  • 승인 2012.05.08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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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A군은 같은 반 B군에게 계속 눈을 흘긴다. 또 다른 학생 여러 명은 B군을 교실 밖으로 불러 내 윽박지른다. 한 고등학교. 이 학교 3학년 B군은 하굣길에 한 번은 동급생으로부터, 또 한차례는 다른 학교 고교생들로부터 돈을 빼앗긴다. B씨가 30여 년 전 중·고교를 다니면서 실제 겪은 상황이다. 그 당시에도 ‘무슨 파’라는 이름의 폭력서클이 있었고 핫도그 심부름을 시키는 지금의 ‘셔틀’(일종의 심부름)이 존재하긴 했다.

30여 년이 지난 2012년 현재. 학교폭력은 진화했다. ‘심부름’은 ‘셔틀’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숨도 못 쉴 정도로 집요해졌고 학생 간 폭력도 죽음을 부를 만큼 흉포화했다. 과거 폭력으로 간주 되지 않았던 눈흘김과 같은 경미한 사안도 이젠 괴롭힘의 범주에 들어 학교폭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야 쭈구리. 왜 대답이 없어. 어 볼펜 새로 샀냐? 나부터 쓰고 너 써라” “찌질아, 100원 줄 테니까 햄버거 사와” 이번 주 온라인 웹툰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짧은 웹툰 속에는 괴롭힘과 갈취, 셔틀이 존재한다. 이 예문에 나오진 않았으나 후환에 떨며 외면하는 친구들의 얘기 속에서 방관과 보복을 읽을 수 있다.

셔틀이 판친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종족의 수송선인 셔틀에서 유래했다. 심부름을 시켜 그 명령을 거부하면 보복으로 이어지는 셔틀은 종류도 갖가지다.

가방셔틀에서부터 망셔틀·담배셔틀·급식셔틀·생리대셔틀·안마셔틀·와이파이셔틀·알바셔틀까지 진화를 거듭하면서 비열하게 약자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신종 셔틀은 와이파이와 알바. 와이파이셔틀은 3G 통신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요금제에 가입해 스마트폰의 테더링 또는 핫스팟 기능을 힘이 센 학생에게 바치는 것이다. 가해자는 인터넷이 어디서든 끊기지 않도록 와이파이를 셔틀하도록 하는 것으로 간접적인 금품갈취다. 알바셔틀은 친구들을 택배 물류창고에 취직시킨 뒤 아르바이트 일당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조직폭력배를 닮은 꼴이다.

청소년들은 동성친구를 성추행하고 동영상까지 촬영하는 일에도 부끄럼이 없다. 지난해 도내 한 고교에서 폭력과 심부름은 물론 성추행한 사건이 일어나 학교가 도교육청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 주로 부적응 학생이 가해자로 군림하던 과거와 달리 학생회장과 최상위권 학생 등 누가 봐도 ‘범생이(모범생)’ 기질의 학생이 일진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어 승자가 주목받는 학교문화 속에 완벽히 은신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진화한 형태인 사이버 폭력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블로그와 카페를 만들고 이메일로 괴롭히던 것을 실시간 버전인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카톡)을 수단으로 쓴다. 외형적인 폭력으로부터는 눈에서 벗어나면 그만이지만 문자와 카톡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중학생 C군은 문자나 카톡으로 “3시에 꼭 전화받아라. 게임하러 들어와라” 등 쉴새 없는 괴롭힘에 시달린 적이 있다. 안전지대가 없어진 것이다.

전북도교육청의 올 초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외형적 폭력보다 집단따돌림과 협박·욕설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65.4%가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72.1%는 성인흉내를 내는 등 흉포화하거나 심해졌다고 응답할 만큼 심각해진 상황과 특히 폭력의 진화를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종각 도교육청 장학관은 “모방이 문제인데, 관련정보를 인터넷서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장경험이 많은 신순선 서남대 교육대학원 교수(청소년지도 및 상담)는 “놀고 뛰던 공간은 이제 또래가 있는 학원과 카톡이란 사이버공간으로 옮겨졌다”면서 “부모와 교사가 힘든 부분을 덜어주면 이같은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고 어른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폭력은 진화하는데 예방과 치유책은 진화하고 있는가.

소인섭기자 isso@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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