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과 상호존중 (5)
자율성과 상호존중 (5)
  • 문창룡
  • 승인 2012.05.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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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삶 속에서 욕구 충돌을 없앨 방법은 없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는 시간까지 계속 충돌하는 욕구로 인해 고민한다. 그래서 대자연과 함께 초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끔 방송에 방영되기라도 하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라면 욕구 조절이 가능하기도 하다. 연인끼리는 한 사람이 욕구를 강하게 드러낼 때 다른 한쪽이 자기의 욕구를 내려놓으며 그 욕구를 수용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연인 관계일지라도 한쪽 욕구를 위해 다른 한쪽이 자신의 욕구를 계속 포기해야 한다면 균형은 오래가지 못한다. 각자의 내면에 일어나는 욕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조율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욕구의 원리는 부모자식 사이에도 적용된다. S의 집에서도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S의 어머니 L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S의 욕구를 수용해 주었던 편이다. 그러다 보니 S에게는 과도한 자율성이 패턴으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S의 과도한 자율성은 L의 자율성을 억압해 왔다. S와 L사이에는 조율이 필요했다. 둘 사이에 조율이 안 되어 다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중재자가 다름 아닌 S의 아버지 K였다.

힘을 가진 K의 등장은 S의 집에 새로운 관계구도를 만들어 냈다. K는 L의 편을 들며 S의 자율성을 억압했다. S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버지 K로부터 억압받는 입장이 되다 보니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사실 S는 K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했다. S처럼 자기의 욕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내겠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절대로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한다. 이런 부류의 아이들은 부모와 지냈던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보살핌과 경제적 도움을 제공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압에 대한 상처가 크고 자신의 욕구가 억압받은 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가 누구일지라도 상대방은 욕구가 있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K는 S의 욕구를 힘에 의한 논리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형식적이며 지시적인 대화는 안 된다. S와 L의 문제를 경청하며 듣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진심으로 공감해야 한다. K는 중재자가 아니라 상담자의 입장이 되어 S와 L, 두 사람과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필자가 K의 입장이 되어 대화내용을 만들었다.

“S야, 네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엄마가 원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S는 아마 엄마의 욕구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 K는 “너와 엄마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할 방법을 함께 찾아 볼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집은 많지 않다.

이때 L과도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누어서 S가 자신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문제의 핵심은 S만이 아니다. S, L, K 모두의 문제이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호존중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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