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숨바꼭질하는 그 모양을
파랑새 숨바꼭질하는 그 모양을
  • 진동규
  • 승인 2012.05.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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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돌아왔다. 연은 나가기도 또 돌아오기도 하는 꽃이다. 나갈 때 무엇이 어쩌고 어떠하다는 등 입소리 콧소리 한번 비친 일 없으니까. 언제 나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항상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지를 않은가. 들어올 때도 그렇다. 사또 행렬처럼 나팔 불고 기세 등등 위엄을 부리지도 않는다.

어느 날 흔연하게 거기 앉아 있는 것이다.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이웃 마을에서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늘아기 돌아왔다는데 하는 식이다. 어느 날 그윽한 향을 데리고 연꽃이 우리 심청이가 타고 온 가마 문을 열었던 것이다.

무장읍성이 지금 신화를 짓고 있다. 돌아온 연이 그윽한 향으로 신화를 더 이어갈 것이다. 신화란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어울려 만들어지지 않던가.

무장읍성의 연은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나가버린 것 같다. 연은 물이 없으면 못 산다. 동헌을 폐쇄하여 학교로 만들면서 유일한 물줄기인 우물터를 메워 운동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연이 나갔다기보다 연을 몰아내 버린 셈이다.

무장읍성은 태종 2년에 조성되었다. 고려조의 무송현과 장사현을 병합시킨 것이다. 무송의 ‘무’ 자와 장사의 ‘사’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오래된 역사도 역사려니와 그 숱한 병화에도 해를 입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냈다는 점이다.

문화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생명체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다. 잡다한 것들 다 걷어내고 본래의 주인만 남은 무장읍성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오백 살도 넘은 늙은 나무들이 동헌과 객사를 건너는 기침 소리까지도 완급을 조절해주고 있지 않은가. 객사의 현판은 ‘송사지관’이다.

고려조 무송현의 ‘송’을 취하고 장사현의 ‘사’를 취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동헌의 원이 “뭔가 좀 그렇잖아?” 하면서 한마디 던진 것이다. “영감 말씀 듣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렇긴 그러네그려.”

‘소나무 송에 모래 사’ 리듬이 있어야 했다. 소나무 숲에 솔바람 소리가 있고 백사장에는 반짝이는 햇살이 있어야 하지를 않겠는가. 기침 소리를 건네주던 나뭇가지들은 금방 악기가 되어 연주를 시작했으리라. ‘솔바람 소리는 푸른 취’자요 ‘반짝이는 백사장은 흰 백’이라. 그리하여 동헌의 현액은 ‘취백당’이다.

지난 25일이 동학농민혁명 기포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기포지인 구시내에서부터 대오를 정비했던 여시뫼, 그리고 무혈입성하는 기념 행사를 하는 것이란다.

‘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역사는 이긴 사람의 것이구나.’ 전율해 오는 한 생각. ‘지금 무장읍성의 주인은 농민군이 아닌가. 앞으로 써나가야 할 역사는 바로 이들 몫이 아닌가.

기적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 있으면 기적이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야 하지 않겠는가.

연꽃의 기적이 무장읍성에 일어난 것이었다. 기포제를 치르면서 그 옛날처럼 남문에다가 동학농민혁명격문을 내건 지 몇 번, 지표 흙을 걷어내고 드러난 연지에서 연잎 한두 잎 돋아나더니 이제는 연못 가득 연꽃이 피어난단다. 백 년도 훨씬 전에 소리없이 떠나버렸던 연이 돌아온 것이 아닌가 말이다.

천 년도 넘는 연씨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걸 심어 꽃을 보았다는 신화 같은 기사가 있었다. 그런 기사를 읽긴 했지만, 탄소측정까지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보 차원의 지식이었지 않은가. 무장읍성의 연은 역사의 현장에서 지금 보여 주고 있는 기적이다.

그때는 동헌 교실이라 불렸던 그 교실에서 연필을 깎았고 사두봉 늙은 팽나무 열매도 따 먹었고 도깨비불이 살고 있다는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느티나무들 사이로 숨바꼭질하던 무장토성이다. 올해 연꽃 철에는 무장읍성의 연을 보아야겠다. 그 연꽃 속에서는 파랑새 날갯짓 소리가 들릴 것이다. 녹둣빛 번져가는….

진동규<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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