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과 상호존중 (3)
자율성과 상호존중 (3)
  • 문창룡
  • 승인 2012.04.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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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자신을 믿어준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헌신으로 보답했다. 주머니속의 용돈을 망설임 없이 쓸 줄도 알았다. 행동반경을 벗어난 곳에도 기꺼이 나타나 주었다. 그러한 S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정말 멋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성장하면 반드시 큰일을 할 아이니까 잘 키우라고 S를 칭찬했지만 부모만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S의 행동이 자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율성과 상호존중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관계는 힘을 가진 자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힘을 가진 사람의 자율성은 비교적 지켜지는 편이지만 힘없는 사람의 자율성은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모처럼 가족행사를 하는 것을 지켜봐도 그렇다.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시골에 계신 할머니 집에 들러서 오는 길에 토종닭 백숙을 먹고 오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오락실에 들러서 아이스크림가게에 가자고 했다. 할머니 집까지는 너무 멀고 더군다나 토종닭은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때 어머니가 거들었다.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시간이 생겼고 할머니를 본지도 오래 되었을 뿐더러 토종닭은 몸에 좋지 않느냐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아이들도 자신들의 시간이 중요하다며 싫다고 했다. 재차 이유를 설명해보지만 부모의 마음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양보하지 않았다. 이때 어머니가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할머니 댁에 모두 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아이들은 짜증을 냈다.

부모와 자녀의 욕구 충돌은 상호존중에 의해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이 결정권을 행사한다. 자녀들과의 욕구충돌에서 억제된 자율성을 강요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다보면 부모의 결정은 항상 옳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이러한 일은 S의 집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S는 자율성이 자주 억압되는 상황을 접해야만 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꼈다. 상대적으로 아빠, 엄마, 형은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보였다. S는 가족에게 느끼는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밀착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얻었다. 그나마 S는 다행이다. 이러한 경우 관계 맺는 것을 꺼려해서 차라리 외로움을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혼자 있으려는 극단적인 패턴이 형성된다. 어린 아기들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불안을 감지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엄마에게 계속 붙어 있으려는 것과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것은 두 패턴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S의 어머니 L은 이것을 절실하게 공감한다. S가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 지나치게 밀착하고 있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 위해서 무슨 반찬을 만들었느냐고 하기도 하고 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만들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반찬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보채면서 따라다니기라도 하면 집안의 평화가 깨지기 일쑤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억지스럽게 상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S는 혼이 나야했고 다시 외로워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형 H가 씩하고 웃는 모습도 마음에 거슬렸다. S는 다시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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