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과 비선형
선형과 비선형
  • 김인수
  • 승인 2012.04.12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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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예전에도 복잡한 물리적 현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비선형의 불규칙한 현상을 선형으로 근사시키기 위한 통계적 처리 기법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요철이 심한 땅을 불도저로 고르는 것처럼 하는 방법이어서 대체적인 상황은 판단할 수 있어도 살아 움직이는 실상은 파악할 수 없다. 선형(Linear)과 비선형(Nonlinear)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중학교 1학년 수학책에 나오는 1차식이나 1차 함수들을 선형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 것이다. 선형이란 그래프가 직선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1차식의 그래프는 직선형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선형계획법(Linear Programming)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명백하고 간단한 운동을 하는 선형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오직 비선형의 상태에서 문제가 된다. 선형은 단순하다. 하나의 원인에는 하나의 결과가 있을 뿐이며, 결과를 보고 원인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비선형은 그렇지 않다. 선형과 비선형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개미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 개미들이 선형적으로 협동할 때는 개미의 숫자와 비례해서 무거운 먹이를 운반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개미가 비선형적인 협력을 할 줄 안다면,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개미로도 더 무거운 먹이를 운반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선형과 비선형의 차이이다. 비선형은 이처럼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훨씬 높은 차원의 현상을 일으킨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비선형 현상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비선형성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비선형성의 활용에서 많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비선형 방정식 가운데서 특히 피드백 (feed back)의 성질을 갖는 대상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피드백은 하나의 방정식이 있을 때, 그 식에서 나온 결과가 계속 반복적으로 같은 식에 대입되는 성질을 갖는다. 겉보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피드백이 되풀이되면서 상황이 매우 복잡하게 변화한다. 예를 들면 주식 시장에서의 그래프를 보면, 식은 하나이지만 그것으로부터 나온 결과는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또 축구경기에서 각 선수들의 순간마다 위치를 맞추는 일처럼 말이다. 선수들이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공의 위치가 바뀌므로 선수들의 위치가 앞으로 어디에 있게 될지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다.

뉴턴역학에서는 선형이 주된 연구의 대상이었다. 선형은 몇 개의 단순한 구성요소로 분석하여 그들의 특징을 파악하면 다시 종합함으로써 전체 행동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뉴턴역학의 대상은 주로 정량적인 방법이 사용된다. 비선형이라 해도 선형으로 근사시키는 선형화라는 방법으로 비선형의 항을 소거하여 근사적으로 단순한 형태로 바꾸어 그 행동을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선형은 본질적으로 몇 개의 간단한 구성요소로는 분석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만약 분석이 된다고 해도 그것들이 종합될 때는 각 부분, 또는 요인들이 서로 상승 작용하여 전체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선형적인 현상은 자연계에서는 극히 특수한 경우이며, 오히려 비선형적인 현상이 보다 일반적인 것이다. 게다가 비선형을 선형에 근사시키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까지의 과학은 좁은 선형의 세계가 주된 연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비선형적인 사건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어린이가 빨리 키가 크고 힘도 세지고 싶어서 밥을 많이 먹는다 하여도 먹는 양에 비례해서 키가 크거나 힘이 세지지 않는다. 물을 준 만큼 나무가 자라주지는 않는다. 엔진을 크게 한다고 자동차의 속도가 그에 비례해서 빨라지지는 않는다. 이처럼 우리 주변은 온통 비선형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아다마르에 의하면 자연현상을 표현하는 방정식은 적어도 세가자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방정식의 해의 존재성으로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즉, 현재의 상황을 알게 되면 미래에 관한 방정식은 반드시 풀린다. 다음으로 해의 유일성으로 현재의 상황이 분명하면 방정식의 답은 꼭 한가지로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해의 안정성이란 것이데, 현재의 상황이 조금 변할 때, 방정식의 해도 그에 대응하여 조금씩 변화한다. 앞에 두 가지를 합하여 수학에서는 방정식의 해의 유일적인 존재성이라고 한다. 수학자들은 아다마르에 이 말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실제의 자연은 엿장수 맘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에는 이들 조건에 만족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근대 과학혁명이후 수학자들은 대부분 서구인들이었고, 이들은 독실한 기독교 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들의 사상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은 질서 정연한 창조 작업을 하였다는 생각에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현상에는 당연히 그 뜻이 반영되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믿음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질서 정연한 것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수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짓궂은 것 같다. 미래가 유일하게 전개된다는 해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은 양자 역학에서는 지켜지지 않았고 현재가 조금만 변하면 미래도 그 대응해서 조금 변한다는 해의 안정성은 기상학이나 일기예보에서 확인된 나비효과로 인하여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래의 예측, 즉 해의 존재성마저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의 결론이다.

이학박사 김인수, 호남수학회장, 전북대학교자연과학대학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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