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81. 자율성과 상호존중 ①
[교육이야기]81. 자율성과 상호존중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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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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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81. 자율성과 상호존중 ①

꽃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매화꽃, 산수유, 벚꽃 순서로 남쪽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꽃들을 보면서 오묘한 자연의 조화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무리지어 핀 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혼자 피어 있는 꽃도 아름답다. 두어 그루씩 그룹을 지어 핀 꽃들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나름대로 모두 아름답다. 그것은 꽃이 가진 독자성과 자연스러운 어울림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엄동설한의 추위와 메말라서 푸석푸석하던 가뭄을 용케 이겨내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빛깔을 지켜내며 무리지어 곱게 핀 나무들에게서 사람 사는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향기까지도 난다. 사람의 향기란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사람을 꽃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원을 넘어 어떤 가수는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노래하기 까지 한다. 사람의 향기는 성숙한 사람에게서 난다. 성장한 나무가 꽃을 피워내듯이 말이다. 나무나 사람은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그러기에 강한 바람과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나무와 사람에게서 꽃과 향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사람의 성장과정은 더욱 그렇다. 오늘 만난 지인은 내 슬픔을 밖으로 내놓고 싶지 않아 어설픈(?) 상담을 받기 싫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시련과 슬픔은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자란 나무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듯 이제는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사실 사람의 지난 과거를 들어 내놓고 분해해서 퍼즐처럼 다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누군가가 맞추어 낸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못하거나 본질을 떠난 전혀 다른 모습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게 닥치는 시련과 상처는 나무에게 부는 비바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키운 8팔이 바람이었다고 노래한 시인의 발견이 그것 아닐까?

자녀교육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주변에서 요청하는 상담과정에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 때 참으로 안타깝다. 몇 가지 비책(?)을 제시해 보지만 그것이 잘 통하지도 않는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과 함께 다시 사람을 교육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필자는 자율성과 상호존중의 관계를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심도 있게 자녀교육을 고민해볼까 한다.

서양의 문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집단의 조화와 결속을 도외시했다. 반면에 동양의 문화는 상호존중을 근간으로 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희생을 강요해 왔다. 문제는 서양문화가 가지는 개인의 자율성이나 동양문화의 속성인 관계정립이 극단적으로 흐르면서 왜곡된 교육방식을 취한다는데 있다.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보다는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래서 서양의 교육이론이든 동양의 교육이론의 한쪽만을 따라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관계를 떠난 개인의 성취는 의미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욕구와 관계의 사이에서 번민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욕구와 관계를 적절하게 조율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자태를 뽐내며 홀로 핀 꽃이거나 서로서로 무리지어 조화롭게 핀 꽃무리가 아름다워 보이듯 우리 사람도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미덕을 갖춘 사람에게서 꽃보다 더 아름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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