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南 第一門을 바라보며
湖南 第一門을 바라보며
  • 이영옥
  • 승인 2012.03.28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를 떠나던 해가 1986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이십 수 년 전이 분명하다. 생활 근거지를 옮기긴 했지만 지금도 금산사 아랫동네 용화동에 본가가 있고 제법 많은 지친들이 그리운 모습들 그대로 여직 그 곳 전주에 머무르니 마침한 일이 있거나 없어도 수시로 전주를 드나든다. 그 때 마다 전주에 들어서며 맨 처음 마주치는 물상이 바로 “湖南 第一門”이다. 팔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우뚝 버티고 선 일주문의 유려한 용마루와 강직하고 올곧은 서체며 아마도 이 땅에서 제일 큰 편액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깨춤에 힘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즈막엔 그런 흥이 전혀 일지 않는다. 호남 제일문을 관문으로 삼는 전주는 분명 “湖南 第一城”이리라. 그래서 지금 전주는 호남제일부중인가? 아니다. 호남제일성은 커녕 “湖南末城”이라 해야 마땅하다. 65만 전주시민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우리 현대정치 60년을 관통해온 변함없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서의 대의 민주주의였다. 물론 우리의 민주주의가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한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결합, 독특한 정치행태와 문화를 형성했고, 이러한 정치 환경을 통해 등장한 권위주의적 전제정권과 군부독재정권을 구축하기 위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참극을 거치며 고착된 "이념적 대결", 민주화 투쟁의 와중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된 지역감정이라는 "정서적 대립"이 우리 정치를 관통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정치적 가치와 모멘템을 대신해 2012년 우리 국민이 선택한 새로운 가치는 아마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인 듯하다. 그 기준과 선택을 통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변혁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당정치의 붕괴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같은 이상 징후들 또한 이 같은 변화의 가장 분명한 반증에 다름 아니다.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의 창출"이야 말로 향후 우리 정치가 지향하고 반드시 구현해야 할 최대의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막론하고 일반대중의 의지와 요구를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수단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했을 때부터 현재의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지와 강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이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다수 유권자들의 심정적 동의를 얻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최근 들어 전주 일원에서 자행되어 온 민주당의 정치행태가 과연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는가? 결론은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65만 전주 시민이 마치 저희 주머니 속의 장기알 이라도 되는 양 오만하고 일방통행 적인 광태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전주시민의 의사와 자존감을 배려한 흔적은 눈을 씻고 보아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민주당이 이제껏 보여 온 작태는 목불인견의 미친 짓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무릇 지역구 국회의원이란 자신이 속한 지역주민들의 정치적 의사와 요구를 대변하고 지역현안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중앙정부에 강조하고 반영시켜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 마련한 선출형정무직이다.

전주에 배정된 지역구 의석은 모두 3석이다. 전주의 현안을 힘써 챙길 의원이 셋이나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 공천한 후보는 모두생애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지망하는 신인으로 당선이 되더라도 말 그대로 초선이다. 지역구 의원의 선수는 매우 중요하다. 국회 내에서의 위치는 물론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는 다선의원들 여러 명을 차출해 전략공천도 마다하지 않은 민주당이 유독 전주에는 초선의원들의 잔치판을 벌인 셈이다. 그들이 재선을 거쳐 삼선의 중진의원이 될 때까지 십여 년 간 전주시민들은 마냥 기다리며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이야기다. 이웃고을에선 4선에 도전하는 현역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고 한다. 전주 시민의 심경과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한 명쯤은 이웃고을의 다선의원을 차출 전략공천이라도 했을 것이다. 물론 이지역의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에 함몰되어 지역구 의원으로서 감내해야 마땅한 최소한의 노고에도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주에서 감행한 민주당의 공천은 어떤 논리와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오만과 방자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참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서 전주시민은 이번 선거를 반드시 희화화 해버릴 필요가 있다. 누구를 선택해도 좋을 일이다 민주당 후보만 아니라면… 그리하여 전주시민들이 저희가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만만하게 꺼내 쓸 수 있는 제 주머니 속의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속 깊이 아로새겨줄 필요가 있다.

이번 4.11 총선에서 당선하는 인물이 누가 되었든 간에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남다른 경력이나 눈부신 업적을 이룬 사람이나 개인의 안락과 평안을 추구한 이기적인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웃의 고통을 제 것으로 하고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같은 바람이 헛된 망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남은 세월이 얼마나 상쾌할 것인가?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만에 하나 일어나기만 한다면 그 때 비로소 전주는 호남제일문을 관문으로 삼은 진정한 호남제일성으로 우뚝 바로서지 않겠는가?

이영옥(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