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인 봄을 준비한다면
미학적인 봄을 준비한다면
  • 김완순
  • 승인 2012.03.1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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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어리면 두터운 겨울옷이 지루해 진다. 성급하게 마음에 가벼운 옷을 입고 외출해서 뼛속을 후비는 동장군의 기세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조급하게 계절을 당기는 모습을 보면서 노파심으로 “고뿔든다”고 경고했었고, 필자는 경고를 듣지않고, 봄을 빨리 부르고 싶은 마음에 성급하게 외출을 하였다가, 며칠을 고뿔로 고생하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급하게 봄을 재촉하지도 않거니와, 봄을 기쁘게 느끼며 맞이하는 지혜를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했다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경이로운 혜안과 통찰력으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라 했다. 봄이 왔다고 만물이 저절로 소생하는 것은 아니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서 어루만져 줘야 비로소 움을 틔운다. 대게 아름다운 꽃노래를 부르면서 봄을 예찬하지만, 그는 꽃을 피우게 하는 물이 사방에 가득한 것을 봄이라고 했다.

편입하여 뒤늦게 섬유공예를 공부하면서 ‘창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천지만물의 신묘한 변화에 필자의 작품을 견주면서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수업을 받고, 배우면서 자연미와 인공미를 구분할 수 있었고,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인공미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요즈음같은 기운생동한 시절에는 미학적인 논리가 무력하고 헛갈린다.

필자도 들은 얘기지만, 교동아트를 자주 들리는 화가 L씨의 이야기이다.

운전하다가 갑자기 차를 세우고는 갈대숲에서 소리내어 펑펑 울었단다. 동승했던 아내가 놀라서 “왜 울어요?” 물었더니, 눈물을 훔치며 하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갈대를 화가들이 이상하게 그려 망쳐놓는 것이 슬프서 운다” 했다고 한다. 얼마나 순수하고 정다운 감성의 소유자인가! 지금도 그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답하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중견작가이시다.

그림과 그리움을 한뿌리로 해석해서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리움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을 것이다.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이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의 몸부림일 것이다. 미술이나 공예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작품 안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시대의 진실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담겨있다. 움켜쥘 수 없는 것을 움켜쥐려는 그들의 속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더욱 열렬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창의적인 생각을 키워가기, 너무 뻔한 규격품으로 살지 않기, 남의 개성도 존중하며 자신의 개성을 가꾸고 성찰하기 등, 결국 자기 치유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언젠가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비디오 게임에 사로잡힌 아이들이 독서와 연극, 미술 관람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정부에 촉구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제 현대인에게 불안은 질병이다. 불안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고정된 삶, 개성이 사라진 획일적인 삶, 심지어 일상적인 억압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이런 외부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속지 않기위한 통찰력있는 해석과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충족과 풍요가 커질수록 내면적인 허전함과 갈증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거대한 물체 위에서는 속도감을 못느낀다고 했다. 가공할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는 지구 위에서 전혀 속도감을 못 느끼듯이, 삶이 일상의 반복에 익숙해질수록 매너리즘은 소리없이 뿌리를 내리고 내면을 관장하는 지배자가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술전시관에서 아름다운 감성의 예술가와 작품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자고 나면 날마다 빈 화폭과 마주서는 고통속에서도 복된자가 화가이다. 건조한 일상에 촉촉한 단비처럼 이 복된 화가들의 작품들과 대면해 보는것은 어떠한가. 비가 그치면 봄을 준비한 위대한 생명의 환희와 분명 맞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허전함과 갈증에서 벗어나 내가 주인이되는 환희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김완순<교동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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