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의 아내
김수로왕의 아내
  • 문창룡
  • 승인 2012.03.06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주 먼 옛날, 한반도 남쪽에 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500년간 존속하며 철을 일본과 중국에 수출하는 무역의 나라, 가야금을 켜는 풍요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야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신비의 왕국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삼국사기에는 가야를 체계적으로 기술조차 안했고 이웃나라 역사책 일본서기에 터무니없이 왜곡된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그나마 삼국유사에 설화 형태로 기록이 있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가야 시조 김수로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수로왕이 나라를 건국한지 7년 후 왕비를 맞이했다. 기록에 의하면 왕후는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로서 돌배를 타고 시집왔다. 당시 16세였다. 성은 허씨였으며 이름은 황옥이었다. 한국식 이름을 새로 지은 것 같다. 허왕후는 10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큰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고 아들 중 2명은 모계인 허씨 성을 따랐다. 허황후는 국제결혼의 원조이며 호주제도의 파격을 실천한 여성운동가인 셈이다.

경남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 왕릉의 정문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쌍어문이라 불리는 이 문양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야 지방에서만 발견되고 있으며 허왕후의 친정동네인 인도 아요디아 지방의 사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현재 그녀의 무덤 앞에 놓여 있다. 이 석탑을 만든 파사석은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돌이다. 쌍어문과 파사석탑 등의 근거로 허왕후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오래된 옛날이야기만 아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박사의 부인이 오스트리아에서 시집 왔다. 영부인 프렌체스카 여사다. 프렌체스카 여사는 미국이 선정한 좋은 아내(Best wife)에 뽑히기까지 했다. 이미 2,000년 전에 외국인이 왕비가 되고 그 후손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놀랄 일도 아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글로벌하지 못한 그 당시에 왕이나 대통령도 국제결혼을 했는데 하루에도 수천대의 비행기가 뜨고 지는 글로벌시대를 사는 우리가 국제결혼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매우 시대감각이 떨어지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수만 쌍의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국제결혼 커플이 생겨나고 있지만 국민들의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교육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들의 남편이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어서 그럴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스스로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오류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허왕후와 프렌체스카여사의 후손일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조차 편견이다. ‘코시안’으로 부르다가 ‘온누리안’이라 하더니 지금은 ‘다문화가정’이라고 이름만 바꾸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제결혼을 받아들여야 할 생활로 인정하면 된다. 옆집 순이와 뒷마을 철수의 결혼을 특정한 이름으로 분류하지 않듯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의 혼인을 순이와 철수의 결혼처럼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네 K씨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2세, 3세들이 거리낌 없이 우리 지역의 시장 군수에 당선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