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 김판용
  • 승인 2012.02.2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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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는 선남선녀들이 넘쳐납니다. 거리에서나 방송에서 한눈에 보아도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들이 넘쳐납니다. 길쭉한 키,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날, 균형 잡힌 몸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장에서 갓 뽑아놓은 정형화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대부분 아름다움을 논할 때에는 외면적 아름다움과 내면적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눈에 먼저 띄는 외면적인 것으로 따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주관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아름다움은 사물의 성질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흔히들 아름다운 감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동정, 감동, 애정 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며, 이런 마음의 출발점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적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서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출발점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므로 내면적 아름다움의 기준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만 보이는 외면적 아름다움과 내면적 아름다움에 ‘자신’이 기준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로 외적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적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이 결국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자신’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자신’과 주변 사물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도 적용되어 타인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준으로 본 아름다움만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으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 자신의 기준으로 본 아름다움이 한군데 모이게 되면 그 시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는 사회는 유연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오수중 3년 이희진

<강평>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매우 사색적인 글이라서 깊이가 느껴진다. 그런데 같은 어휘를 지나치게 반복한 경향이 있다. 한 문장 안에 같은 어휘는 글을 단조롭게 만든다. 다른 어휘로 바꾸거나 생략하는 훈련을 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색적인 글보다는 가치중립적인 주제를 골라서 써보는 것도 논술을 위한 훈련이 될 것이다.

김판용(아중중 교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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