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빵집 논란과 재벌 개혁
재벌 빵집 논란과 재벌 개혁
  • 김우영
  • 승인 2012.02.0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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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때리기, 재벌 개혁이 사회적 논제가 된다는 것은 이제 선거가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거 때가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 개혁을 외치지만, 선거가 끝난 후엔 잠잠해 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 아니었나 싶다. 재벌 개혁을 외치고자 한다면 재벌 그룹의 어떤 행동이 문제인가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재벌 빵집 논란은 재벌 개혁의 문제와는 매우 동떨어진 논의로 보인다. 재벌 2, 3세의 여성들이 잇달아 고급 베이커리 사업을 하게 됨으로써 이들의 경쟁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었는데, 이것이 주목을 받으면서 재벌이 빵집까지 운영한다는 비난으로 변질하고, 재벌 2, 3세의 빵집 사업이 재벌이 동네의 골목 상권인 빵집까지 넘보는 대표적 사례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의 반재벌 정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재벌 빵집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자마자, 이에 화답이라고 하듯이 각 재벌 그룹들은 빵집 사업과 순대, 청국장 사업 등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재벌 빵집 사업의 철수는 정부 차원에서 재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벌들이 이를 받아들인 모양새이지만, 골목 상권과는 한참 거리가 먼 삼성, 현대, 롯데가에서 운영하는 대부분 빌딩 안에 있는 소수의 빵집들이 폐점한다고 해서, 동네 골목의 빵집이 살아난다고 믿는 빵집 주인은 없을 것이다. 골목 빵집 문제는 재벌 빵집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중앙회의 발표를 보면 2003년 초 전국의 자영업자 제과점의 점포 수는 1만 8천개였던 것이 지난해 말 4천여 곳으로 크게 줄었고, 반면에 프랜차이즈점인 파리바게트는 3천여개로 늘었고, 뚜레쥬르 또한 1천400여개로 늘었다고 한다. 동네 골목 빵집을 위협하는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동네 골목 자영업자 빵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정 지역, 전국 단위의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 수를 제한하거나, 빵집 등 동종 업체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재벌 빵집의 논란과 재벌의 빵집 철수 결정은 우리의 재벌 개혁 논의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였으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기사에서 한국의 재벌 빵집 논란에 대해, 정치권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소 제과, 제빵 업자들을 끌여 들어 대중적 인기를 높이려하고 있다고 썼을까? 이 신문은 재벌 대기업 회장 딸들이 취미 삼아서 빵집을 경영하면서 국민의 일자리를 뺏어서는 안된다는 정치권의 비판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으며, 이를 철수하도록 요구한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이 신문은 문제의 본질은 한국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의 구조조정과 다양한 자영 업체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을 회피하고 있고, 재벌 대기업들이 모험 정신이 충만한 중소 기업인들이 혁신적인 사업을 시작하면, 그 기업을 인수해서 회사의 자산과 인력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막강한 기술력을 갖춘 전문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에 대해 방관하여 온 것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는 전부는 아니지만, 공생 또는 동반 성장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 “동반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과 국민여론에 부응하기 위해서 빵집 사업을 철수한다.”라는 재벌 그룹의 발표는 문제의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최근 재벌 기업들이 전통적인 자영업, 중소기업 업종 등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 왔다는 것은 연간 100여개 씩 늘어나는 재벌 기업 계열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몇 개의 재벌 빵집이 아니라, 재벌가의 문어발 식 사업 확장으로 재벌의 자제가 아니고는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재벌 개혁의 논제가 되어야 한다.

재벌 개혁은 재벌 그룹의 경제력 집중과 탐욕을 막기 위한 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재벌 그룹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룡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될 때이다. 마찬가지로 일정 규모의 자영업자들, 전문 중소기업들의 육성과 유지는 재벌 그룹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는 경제환경 생태계를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이익 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력 스카우트 규제, 대규모 유통업체의 골목 상권 진출 규제 등과 같은 공생, 동반 성장을 위한 정책의 진전을 기대한다.

김우영<전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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