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권(父權)을 사수(死守)하라
부권(父權)을 사수(死守)하라
  • 신대철
  • 승인 2012.02.01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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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화두(話頭)는 정치다. 정치적 변혁과 민생경제 해결의 국민적 요구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이 몰고 온 상황은 정치변혁보다 더 충격이다. 대구지역 중학생 자살에서부터 전주에서 발생한 고등학생 자살사건에 이르기까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문제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해결의 방법은 겉돌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 무너지는 교권(敎權) 앞에 부권(父權)을 염려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근본적 해결을 지시하고 경찰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와 학생의 문제는 어떻게든 학교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순서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와 선생님은 이미 손을 놓아 버렸다. 아니 놓을 수밖에 없도록 내몬 것이 바로 우리가 아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가정교육에서 잘 안 되는 문제도 학교에 가면 해결되었다. 부모는 사람을 못 만들어도 선생님은 사람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는 우리 아이를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인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부모들이 학교에 쫓아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세상이 되었고 학생들 역시 공개적으로 대드는 판국이니 과연 무엇으로 지도할 것인가?

필자는 어젯밤 황당한 일을 겪었다. 퇴근하는 길에 아파트 상가 앞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셋이서 큰소리로 싸움을 하는데 그 중 키 작은 학생이 키가 큰 학생을 죽이겠다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 난리판이다.

그러나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안 되겠다 싶어 필자가 승용차를 세우고 왜 싸우느냐?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 하였더니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며 하는 말이 당신이 뭔데 상관하느냐며 금방이라도 때릴 기세로 달려든다. 아이들이 참 무서운 세상이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더더욱 문제이다. 청소년들의 비행문제가 대두할 때마다 그 원인중의 하나로 무너지는 교권(敎權)을 지적하였지만 수수방관 하였고 오히려 학생인권만 더 부각되면서 학생지도능력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교내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집회를 할 수 있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자식으로서 권리를 주장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교권이 무너지면 그 다음에 도전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부권(父權)이다. 학교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부모가 나서야 하는데 과연 어떤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른 것은 마음대로 다해도 자식농사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일진대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기성세대로서 학교폭력의 문제는 학교와 학생들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철없이 성토할 문제가 아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사회의 지도자로서 나의 책임은 무엇인지 깊이 반성할 때이다.

이제 더 이상 가정에서는 학교를 학교는 가정을 탓하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할 이유가 없다.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여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충실한 멘토가 되어야 한다.

결국,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의 문제는 사건발생 이후 처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대책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바로 이 순간부터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함께 가야 한다.

오늘 당장 빗발치는 여론을 피해가고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소아적 발상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통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마지막 남은 차표 한 장처럼 포기할 수 없는 부권(父權)을 사수(死守)하기 위해 모든 사랑의 열정을 쏟아내는 선생님과 부모가 되기를 희망한다.

신대철<전북청소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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