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탑 해체 3주년
미륵사탑 해체 3주년
  • 진동규
  • 승인 2012.01.2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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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삼 년이 지났다. 천사백 년 세월을 무슨 말로 적을까. 어떤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역사의 갈피를 열거한다고 무슨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까? 미륵사지석탑 이야기다. 탑의 심초석 위 심주석에서 눈을 뜬 것이 2009년 1월 19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만났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천사백 년 전의 현장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러고 삼 년이 지난 것이다. 천사백 년 전의 생생한 숨소리가 침묵을 깨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밤으로 낮으로 문득문득 눈짓을 보내고 흠흠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이 못 속에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올렸다. 공주가 왕에게 말했다

“이곳에 큰 절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제 소원입니다.”

무왕이 이를 허락하고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탑이 서게 되는 자초지종을 귀띔해주는 대목이다. 백제가 문을 닫고 몇 백 년이 흐르고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바람 소리인 듯 냇물 소리인 듯 들려주던 속삭임이었다. 그 속삭임을 조금 더 들어보자.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 미륵법상 세 개를 만들고 회전, 불각과 탑과 낭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

탑의 조성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탑의 조성은 왕실이고 공사 책임과는 지명법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거기에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절의 내용이다. 미륵법상 세 개를 만들고 불각과 탑과 낭무를 각각 세 곳에 세웠다고 밝히고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고자 한다. 탑이 해체되고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해석이 분분하고 어지럽다는 점이다. 사리봉안기 이야기다. 일연선사는 탑에 안치한 사리장엄이며 사리봉안기는 보지 못했다. 그가 보았다면 명징한 해석도 곁들였을 터인데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허나 어쩔 것인가. 사리봉안기를 읽은 것은 우리가 아닌가. 그가 귀띔해준 도움말을 의지하면서 풀어볼 수밖에-.

먼저 사리봉안기를 쓴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왕실의 이야기라든지 종교와 관련된 어떤 말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들게 한다. 삼십구 년이나 왕위에 있는 대왕이고 왕비인데 왕비의 존칭도 쓰지 않고 다른 신료들 눈치 볼 것 없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쓰는 것이나 법왕에 대한 표현에 이르러서는 그 활달한 필치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없는 문장이다.

지명법사다. 사자사의 주인이자 미륵사 창건의 총책임자인 지명이다. 지명의 문장인 것이다. 가로 15.5cm, 세로 10.5cm의 작은 금판에 193자의 글자로 표현해낸 문장이라니, 이것은 완벽한 시다. 당시 현대와 같은 시 형식이 없어 줄글로 늘여 썼을 뿐이지 현대시에 앞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가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시 형식으로 행을 가르고 연으로 나누어 보고 마무리할까 한다.

법왕께서 세상에 나오신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근기에 따라 부감하시고 응하여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어리는 것과 같았네

왕궁에 태어나시고 쌍수 아래 입적을 보이심이라니

팔 과의 사리를 남기시고 삼천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일어나는 오색광요의 7번 요잡이라니

신통한 변화는 불가사의리라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

광겁의 선인으로 하여 금생의 승보를 받으셨네

만민을 어루만져 길러 주시고

삼보의 동량이 되시어

공손히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셨네

원하옵나니

우러르는 자량으로 이 선근으로

세세토록 하는 공양

영원히 다함이 없게 하소서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원하고 원하옵나니

성불 왕후의 수정과 같은 마음 함께

법계를 항상 밝게 비추시고

금강 같은 몸은

허공에 나란히 불멸하소서

칠세 구원토록

함께 복되고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을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법상 셋을 만들고’라고 귀띔했던 미륵 법상에 대한 표현이 간결한 비유로 되어 있다. 법왕께서 세상에 나오신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달이 물속에 어리는 것과 같았다. 그 다음 표현은 직유법에 해당한다. 왕궁에 태어나시고(부처님처럼) 쌍수 아래 입적을 보이심이라니(부처님처럼) 이 미륵사 탑 해체 3주년을 맞으며 세종께서 만드신 한글로 바꾸어 보았노라고 하면 우리 일연선사께서는 무어라고 할 것인가. 낯 뜨거운 일이다. 하물며 사리봉안기를 집필하신 지명 대선사께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진동규<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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