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미술의 승천을 꿈꾸며…
전북미술의 승천을 꿈꾸며…
  • 이흥재
  • 승인 2012.01.24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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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으로는 1월 중순인데 음력으로는 섣달 그믐이다. 올해 임진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黑龍)의 해라고 떠들썩하다. 많은 사람은 “구름을 만나 승천하는” 용처럼 올 한해 웅비하기를 갈망한다. 특히 미술분야의 작가들도 덕담을 나누면서, 혹은 건배사를 하면서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용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상황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끈기, 지혜가 필요하다. 작가들 또한 승천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주제의식과 치열한 작업 등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리라. 전북 미술이 새로운 도약을 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승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는 흑룡의 해다. 생명력이 넘치고 한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용이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다.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동물이다. 토끼의 눈, 사슴의 뿔, 돼지의 코, 낙타의 이마, 뱀의 목과 배, 조개의 가슴, 잉어의 비늘, 매의 발톱, 호랑이의 꼬리 같이 아홉 가지 동물의 장점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동물이다. 몸에는 81개의 비늘이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문 상상의 동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하는,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는 동물로 착각한다. 위엄과 권위로 군림하는 존재에서 점점 친근한 존재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본래 왕을 상징했건, 악귀나 잡귀를 쫓아주든 우리에게 용의 존재는 우리의 소망을 들어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기본적인 동물이었다.

예전에는 음력 정초 대문에 용 용(龍)자와 호랑이 호(虎)자를 크게 붙여 놓았었다. 용수오복(龍輸五福)이요 호축삼재(虎逐三災)라. 용은 오복을 가져다주고 호랑이는 삼재를 쫓아내 준다는 뜻이다. 즉 용은 길상의 기능을 맡고, 호랑이는 벽사(?邪)의 기능을 담당했다. 또 용은 예로부터 사령(四靈)이라 하여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왔고, 호랑이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를 잡아먹는 벽사의 상징이다. 용이 상서로움을 가져다주고 호랑이가 잡귀를 물리쳐주면,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유지된다고 믿어왔다. 우리도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전라북도 대문 양쪽에 용(龍)자와 호(虎) 자를 붙여놓으면 어떨까 한다.

또 우리 불교문화 중 사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식물이 용이다. 용은 법당 전면의 기둥과 처마를 비롯하여, 법당 안의 닷집 천장, 기둥, 벽등에 장식되어 있다. 부안의 개암사 대웅보전에는 건물 내외에 얼마나 용이 많은지 모른다. 조선 중기 이후는 부처님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개암사 대웅보전을 용두보당(龍頭寶幢)이라고도 한다. 전주 풍남문에도 여러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이 용은 전부 부성과 사람들을 지켜주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 내소사 고려시대 범종의 고리, 즉 용뉴에도 용이 새겨져 있다. 종 위에 앉아 있는 용은 포뢰(蒲牢)라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의하면 포뢰는 용의 또 다른 모습이다. 포뢰는 바다에 사는 고래를 가장 무서워하여 그를 만나면 놀라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종은 그 소리가 크고 우렁차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포뢰모양을 만들어 종의 고리로 사용했는데 고래 모양의 당(撞)으로 종을 치면, 고래를 만난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며, 그래야만 크고 우렁찬 종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올해는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로 유난히 외부환경이 유동적이고 불안정적 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불안정한 환경이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인 작품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작업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전북의 문화예술은 그동안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2012년 도립미술관 서울관의 대관 신청자가 138명(단체포함)으로, 거의 3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다. 원로 선생님들에서 20대 후반 신진작가들까지 말이다. 그리고 11월의 첫째주는 2, 3차 지망작가를 포함하여 30명 넘게 지원을 했었다. 그만큼 도내작가들의 서울 전시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립미술관에서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미술거장전>을 준비하고 있다. 예산이나 시간, 특히 인력 모두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올 블록버스터 전시를 잘 치러낸다면 전라북도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벅찬 희망을 꿈꾸어 본다. 그래서 도민들의 문화예술의 향유지수가 타시도에 비해 월등히 앞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용은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능력이 있다고 한다. 용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능력은 용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우리 작가들도 많은 사람의 욕구와 바람에 부응하는 유연성을 가지고 용처럼 천변만화하는 창의력을 가져야 하겠다. 그래야 승천을 할 수 있다. 구름 속에 비가 내리고 불안한 상황을 치고 올라가지 못하면 이무기가 되는 것이다. 전북의 문화예술이 뭔가 우렁차고 특별한 기운을 느껴 올해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되기를 적극 기원하고 희망해본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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