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올랐다?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올랐다?
  • 김대곤
  • 승인 2012.01.03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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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은 참 무심하다. 개개인의 생각이나 희망과 상관없이 흘러오고 흘러간다. 잡을 수도, 머물게 할 수도 없다.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는 경우가 늘어가지만,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긴 시간이 생명체가 아니니 무심이니 뭐니 하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사실 시간이란 원래 시작도 끝도 없다. 시간에 어찌 해(年)가 있고, 달(月)이 있고, 날(日)이 있나? 사람이 제 필요에 의해 토막냈을 뿐이다.

시간이란 말도 어렵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이 하나의 극히 작은 점(특이점, singularity)에 모여 있다가, 어느 순간 급속팽창(대폭발, Big bang)을 시작했다는 게 현대 우주론이다. 그 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단다. 팽창이 시작되면서 공간도 생기고, 시간도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 그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 그 이전에는 우리가 말하는 우주는 물론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그러면 무엇이 있었느냐고? 그건 질문이 안 된다.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새해라는 게 사람이 토막내어 만들어놓은 시간의 한 부분이지만, 분명한 건 어제 진 해가 다시 떠올랐다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오늘 떠오른 해는 어제 진 해가 아니다. 빛을 내기 위해 소모한 수소의 양만큼 적어진 태양이다. 그러나 1백 년을 사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의미 없는 변화다. 어제 진 해가 다시 떠올랐다고 해도 된다.

대학 시무식 때 원불교 대학교당 강덕제 주임 교무는 “새해는 날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말을 했다. ‘날’로 보면 새해는 어제와 같은 날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보면 정월 초하루는 섣달 그믐날과 분명히 다르다. 사실 1백 년을 겨우 사는 사람은 거창하게 우주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아침이슬보다 짧은 인생이지만, 1백 년도 충분히 긴 시간이다. 나이 들면서 후회할 일이 많아진 뒤에는 인생 백 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면 웬만한 일은 거의 할 수 있고,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본인의 게으름과 능력부족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이 모자라서 못해본 일이 있었던가?

더욱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란 것도 알게 된다. 출세했다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한 탓일 게다. 그러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나이 70 되니 내 유전자 닮은 자식들을 생산한 것 외에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나이 되어보니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긴 해도 나는 오래, 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살고 싶다. 내 자녀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부모로서의 관심에서부터 이 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지켜보고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출세는 그만 두고라도 오래 사는 것부터가 ‘장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과 정신이 정상이 아닌 부모를 모시고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가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 이후는 부담으로서 존재할 뿐 인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 백년인생 좋아하지 말라며 손사래 친다.

올해 정초에도 많은 결심을 했다. 더 치열하게, 더 확실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현직이 거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느끼기에 학교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건강을 챙겨 1백세 인생을 대비하자는 다짐도 했다. 여느 해처럼 금년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12월 결산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누군가가 ‘인생은 연극’이란 말을 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연극이 아니다. 연극이 될 수도 없다. 2막도, 재공연도 없으니까. 2막과 재공연이 있다면, 후회 없는 새 삶을 살 수 있을까?

김대곤<원광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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