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주를 물고 비상하는 용처럼
여의주를 물고 비상하는 용처럼
  • 이동희
  • 승인 2012.01.02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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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임진년 올해는 용띠 해이다. 그것도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흑룡의 해이다. 임진년의 ‘진(辰)’은 용을 말하고, ‘임(壬)’은 흑색을 의미한다. 그래서 임진년이 흑룡의 해가 되는 것이다. 호랑이는 백호가 좋고, 용은 흑룡이 좋다고 한다.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 이이를 잉태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용이 바다에서 신사임당 침실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고 하는데, 이 용이 흑룡이었다. 올 한해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려하고, 아이를 잉태하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년을 맞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420년, 칠갑자가 되는 해이다. 온 국토가 쑥밭이 되었던 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고, 또 지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전라도가 유일하게 지켜진 곳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 의학서 『본초강목』에 의하면, 용은 9가지 동물 모양을 하고 있다. 용의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에게서 따온 것이다.

용은 이렇게 상상의 동물이면서도 최고의 권위가 있는 지상 최고의 동물이다. 상서로운 동물을 뜻하는 사령(四靈), 즉 용, 봉황, 기린, 거북이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동물이 용이다.

이런 권위와 상서로움으로 용은 우리 민족과 늘 함께했다. 서양의 용은 악을 상징하지만, 동양문화에서 용은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악을 물리치는 길상과 벽사의 상징이었다. 정초에 집 대문에 붙이는 용호도는 그런 의미이다. 대문 한쪽에 용 글자나 그림을 붙이고, 다른 한쪽에 호랑이 글자나 그림을 붙이는데, 용은 오복을 가져다주고, 호랑이는 삼재를 물리쳐 준다고 믿었다. 불교사찰의 용은 불법을 수호하고, 화재를 막아주는 신이다.

그런가 하면 용은 최고통치권자인 왕을 상징한다. 왕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고, 왕이 입는 옷을 용포라고 하며, 왕이 앉는 의자를 용상이라고 한다. ‘용비어천가’의 용비는 곧 왕의 즉위를 말한다. 또한, 태조어진을 모신 경기전 진전 침실에 쌍용이 그려져 있고, 기와들도 용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도 용이 우리 일상과 같이 했던 것은 비를 다스리는 물의 신이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이 비를 관장하는 동물이 바로 용이다. 따라서 농경사회에서 용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조선 초 기우제를 지낼 때 용이 사는 연못 등에 호랑이뼈를 넣는 풍속이 있다. 용이 사는 곳에 호랑이를 집어넣으면, 용호상박 즉, 둘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용이 비바람을 몰고 와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용’ 자가 들어간 지명이 1,261개로 호랑이나 토끼보다 많으며, 지역별로는 전라도가 ‘용’이 들어간 지명이 539곳으로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전라도에 용지명이 유독 많은 것은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조선제일의 옥토이고, 또 미륵이 곧 용을 뜻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전라도에 미륵신앙이 발전한 데에도, 미륵이 곧 수신(水神) 용을 상징하는데 한 요인이 있다. 미륵신앙의 발전은 농경과 관련이 있고, 이런 상관성에는 비를 관장하는 용이 자리하고 있다.

수신으로서 용과 함께 용이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했던 것은 용꿈으로 상징되는 입신양명의 꿈이다. 많은 사람은 출세를 염원하고, 이런 입신출세를 상징해 주는 것이 용이다. 용꿈 태몽은 큰 인물을 예고하는 것이다. 태몽이 아니더라도 용꿈은 길조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돼지꿈도 좋아하지만 용꿈을 좋아한다.

출세를 뜻하는 등용문은 잉어가 황하강 상류 용문의 거센 물결을 뚫고 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민화 ‘약리도(躍鯉圖)’는 잉어가 물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그림이다. 민화 문자도 ‘충(忠)’을 보면, 아래에는 잉어, 위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잉어가 급류를 뛰어넘어 용이 되는 것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매년 연말 연초에 띠 전시를 해오고 있다. 올해는 그 다섯 번째로 “2012년, 여의주를 입에 문 용처럼”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여의주(如意珠)는 뜻 한대로 된다는 의미이다.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용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어진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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