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 끝자락에서
2011년도 끝자락에서
  • 이한교
  • 승인 2011.12.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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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에서 떨어져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백두산을 종주(縱走)하다 조난을 당하여 하산 길에 바위 밑으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고, 어머니가 시렁 위에 감춰놓은 곶감을 꺼내 먹기 위해 베개를 쌓고 올라가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이처럼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렸던 모든 것을 두고 간다는 생각을 하면, 중학교 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가 문득 생각난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란 말이다. 이를 풀이하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래오래 기억해야할 희생자들의 이름이 벌써 잊혀 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2011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려 한다. 이유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먼저, 중국집 배달원의 죽음이다. 그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타던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충돌해 세상을 떠나며 남기고 간 사연에 많은 사람이 울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로 고시원 쪽방에 기거하며, 5년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를 지원했고, 어린이 재단 앞으로 4천만 원의 종신보험을 들었으며 장기기증까지 희망했지만, 무연고자인 탓에 가족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 장기가 손상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국민은 그를 ‘기부천사’라 불러주었다. 또, 어느 목사의 죽음이다. 한 쪽방촌의 개척교회를 열고 낮에는 설교,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는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그는 노숙자가 찾아오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상담하고, 능력 없는 산모들에겐 기저귀와 분유를 사주는 등 평생 봉사활동에 힘썼던 그의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다.

119 소방관의 죽음 역시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화재현장에서 부상자를 구하고 다친 사람이 더 있다는 얘길 듣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정신을 잃은 할머니를 구했다는 것이다. 또다시 불 속에 가친 사람을 찾기 위해 수색을 하다 집이 붕괴하는 바람에 숨진 사고에 온 국민이 비통해 했다. 국민을 분노케 하는 죽음도 있었다.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특공대원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동안 어선의 불법행위를 단속 중 그들이 휘두른 삽과 몽둥이, 죽창 등으로 2명이 사망하고 4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보도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져 옮을 느꼈다. 중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을 피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강력진압에 걸림돌이 됐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주권 확립과 국내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고 싶은 사건이었다. 자국민이 죽어가고, 엄연히 우리 어장에서 불법조업을 일삼는 그들의 만행에 무기력한 대응으로 피해를 보는 한국, 변변한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침묵에 대하여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왜 유가족의 오열을 보고서야 겨우 유감이라 말하는 중국 당국 대변인의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대책은 없는지 강력한 단속은 불가능한 것이지 이대로 가다간 전 어장을 내줘야 하는 사태는 생기지 않을지, 과연 대국(大國)을 대적할만한 방법은 없는지,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지, 여야가 민의(民意)전당인 국회에서 멱살을 잡고 용감하게 싸우고, 최루탄을 터트리고 도끼로 문을 부숴버리고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당당하던 정치지도자들은 다 어디로 가고, 방안퉁소처럼 왜 말이 없는지 국민이 묻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감전된 주민을 구하려다 감전사한 경찰관의 죽음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를 지탱하고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말뿐인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안타까운 그들의 죽음이 있기에 우리가 평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국민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에 슬퍼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라기는 그들의 죽음 없이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길 희망한다. 일부 소갈머리없는 정치지도자로 말미암아 더 이상의 안타까운 죽음이 없길 빈다. 권력의 썩은 막대기를 쟁취하려고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희생의 빛(光)으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사망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반 인권적 범죄자로 한 시대를 쥐락펴락 했던 독재자로 이름이 남겠지만, 우리는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가슴에 묻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새해에는 누가 아파하는지, 누가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지, 살펴보고 들어주는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인해 시정잡배(市井雜輩) 수준의 정치 틀이 깨어지길 소원한다. 진정 국익을 위해 당당해지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2011년의 끝자락에서 국격(國格)이 상승하고 국민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통일된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한교<한국폴리텍대학 신기술연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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