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희망 그리고 불리불기의 교훈
위로와 희망 그리고 불리불기의 교훈
  • 최낙관
  • 승인 2011.12.26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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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 속에서 희망의 씨앗은 싹트는 것일까? 새해를 준비하는 문턱에서 많은 사람에게 다가오는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이켜 보건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원전사고,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그리고 우리 전라북도의 경우 LH 유치실패와 관련된 아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희망이 늘 ‘위로’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느끼는 많은 위로는 삶의 활력소를 키우는 열정이자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라는 사무엘 울만의 한마디가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지금 우리가 희망의 메시지에 목말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대내·외적 사회문제 산적

특히 현 정부의 출범 이후로 사회적 위험과 불안정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내적으로 소득재분배의 악화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잠재성장률의 둔화와 함께 실업과 소비자 물가는 치솟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가족이 해체되는 등 많은 사회문제가 산적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대외적으로는 FTA 등 경제개방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특히 농업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아울러 BRICs 국가로 명명되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의 약진은 과거 우리 사회가 이루었던 성장의 신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의 저변에서 폭넓게 확산하고 있는 각종 다양한 문제는 위기를 넘어 위험사회이자 결함사회로 넘어가는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물론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으로 애써 재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픈 우리 현실에 대한 자조적이고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우리를 위협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안다. 문제의 심각성은 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반복되었던 희망과 실망의 교차가 이제는 피로감에 빠져 희망의 꿈조차 꾸지 못하는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절망은 더욱 심각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해도 상관없다는 정치적 무관심과 누가 해도 똑같다는 정치적 무분별은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붉은 신호등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큰 틀에서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제도개혁과 변혁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일 수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선행조건은 너와 나를 막론하고 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선 상호 간의 인정과 이해에 뿌리를 둔 위로라고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不離不棄 실천 희망의 꽃 피우는 대안

최근 ‘내가 오늘 살아야할 이유’라는 책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의 주인공은 33세 짧은 생을 마감한 명문 상하이 푸단대학 최연소 교수 ‘위지안(于娟)’이다.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는 이유는 어린 한 아이의 엄마이자 촉망받던 교수였던 그녀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후 2년여 투병생활 동안 깨달았던 삶의 소중함과 가치를 우리들의 가슴속에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절망적인 죽음의 문턱에서 발견한 “결코 헤어지지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불리불기(不離不棄)’의 메시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넘어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은 강력한 영웅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잔잔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보통사람들의 인간적인 위로일 수도 있다. 감동적인 선행과 위로는 우리 지역에도 있다. 12년째 어려운 이웃을 위해 훈훈한 사랑을 실천해온 ‘얼굴 없는 천사’가 쏘아 올린 감동과 행복의 무게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가 살아 있는 한, 용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내년 임진년은 분명 우리에게 희망의 새해일 수 있다. 왜냐하면, 불리불기의 실천이 희망의 꽃을 피우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결코 헤어지지도 포기하지 않는 불리 불기를 실천하는 희망의 생산자이길 기대해 본다.

최낙관<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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