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내린다
흰 눈이 내린다
  • 진동규
  • 승인 2011.12.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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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다. 흰 눈이 내린다. 하늘 가득 깃털보다 가벼운 춤으로 내린다.

땅에서 올라간 수증기 같은 것들이 얼마를 떠돌다가 구름이 되었을 터이다. 구름이 흐르면서 땅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보면 구름도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가 보다. 제가 몸담았던 초원이며, 초원의 꽃이 되라며, 숲의 잎사귀 같은 것들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운영을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여정일 것인가 궁금하다.

어느 날 바람을 만날 것이다. 기압이라든지 기류를 타면서 그 작고 작은 수증기들도 지구가 자전을 하듯이 어지럽게 휘돌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눈으로 몸 바꾸는 절대기류를 만날 것이다.

몸을 바꾼다는 말을 그렇게 가볍게 할 수 있는가. 몸을 바꾸다니 액체였던 물방울이 고체가 되어버린 것 말고도 창조의 신비가 숨어 있다. 헌법보다도 엄숙한 기본 강령이 있었다. 무색, 무취, 무미의 물이 색깔을 입어버린 것이다. 무채의 제로선인 흰색을 입게 되는데 그 명도를 보면 신비를 넘어 경건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명도의 차이가 조금도 없다. 하늘 가까운 푸른빛이라거나 먹구름 속의 회색빛쯤은 전이가 되었을 법한데 절대 순백이다.

설원이 되어버린 대지는 기도처다. 결빙의 강을 보면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강줄기가 얼마나 격렬하게 흘렀던가를 그대로 기록해 놓고 있지 않던가. 바닥까지 휘돌면서 바위에 부딪히면서 연안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음반으로 남기지 않았던가. 숲을 덮고 있는 순백의 이불은 또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저 순백의 색소를 어디서 이끌었다는 말인가. 쌓인 눈이 다 떠난 자리 어디에도 흰색 흔적은 없다. 그 눈의 육각형 자태가 지구상에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하나도 같은 얼굴이 없다 하지 않는가.

창조의 순간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10년 12월 24일의 일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사였다. 20111224호별, 별을 관측하는 순간을 그날의 숫자로 명명하는 명사이다.

두 별이 합쳐져서 블랙홀로 가는 장면을 관측했다는 기사였다. 두 별이 합쳐져서 블랙홀로 가는 것은 몇 광년을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블랙홀이 폭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의 만남이 태양보다 몇 배나 더 뜨거운 불꽃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별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비명이라는 설명은 얼마나 서운한가. 영원으로 가는 뜨거운 축제가 아니던가. 우리가 아직 블랙홀을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이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은 몇 광년보다 길 수도 있다. 한 십 년쯤 돌고 돌아서 만나는 길은 또 얼마나 향기로운 길일 것인가. 꽃보라 쳐 격렬하게 퍼붓는 축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창, 눈이 많이 내린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창을 눈창이라고 부른다. 자욱하니 밀려오는 뻘울음 소리가 그립다. 장끼들이 앞산으로, 건넛산으로 소리 지르며 다니는 모습도 생각난다. 나는 눈 맞으러 고창엘 간다. 한 이틀 자고 올 요량으로 눈 맞으러 간다.

그때도 고창엘 갔었다. 꼭 눈이 올 것 같아서 고향집에 갔다. 눈이 많이 내리는 밤으로는 내 자는 방문 앞 마루 밑으로 노루도 꿩도 함께 와서 자고 갔다. 뒷동산의 숲이 그런대로 잘 어우러져서 봄이면 새들이 새끼들을 키워나가곤 했다. 마을하고는 한참 떨어진 외딴집인데다 내가 저희 좋아하는 것을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방문을 열다가 마루 밑에 자던 노루란 놈 쿵쾅거리며 머리를 찧고 달아나는 것을 본 뒤로 나는 그놈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마루 밑에 굴뚝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온 놈들이다.

겨울이면 목포나 군산 같은 데

겨울 여자 나그네를 만나러 가지

얼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는

파도야 너 같은 여자 나그넬

선창가에 즐비한 왕대포집에

날다가 지쳐 앉은 기럭이처럼

끼룩끼룩 나른이 노래 부르는

겨울 여자 나그네를 찾아서 가지.<중략>
미당 ‘겨울 여자 나그네’다. 부산항이나 인천항처럼 활기 넘치는 항구가 아닌, 얼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는 찌든 생활 그 자체의 군산이나 목포쯤의 손이 꽁꽁 언 여자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여자나그네라고 했지만 실은 생활에 묶여 어디 떠나지도 못하는 나그네다. 즐비한 왕대폿집에 끼룩끼룩 소주 상 차려 놓고 젓가락 장단을 치는 나그네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하는 목월의 나그네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십 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미당이 가신 것이 이천 년 십이월이니 꼭 십일 년 전이다. 그날 아침 눈이 내렸다. 오다가다 하면서 새벽부터 설레고 있었던가 보다.

숲을 덮어주던 흰 이불은 새봄에 피어날 꽃눈을 품으로 감싸주었다. 가지 끝에 아직 철이 안 든 진달래 꽃망울도 설화로 빙화로 싸안았다. 그 흰 이불은 그대로 그 흙에 스며 새봄의 꽃빛깔로 피어나지 않던가.

블랙홀에 드는 별들의 비명은 영원을 선언하는 축제가 아니었던가. 미당은 선운사에서 사사한 스승님과의 끝을 끝내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지금쯤 빛도 놓지 않는 영원의 통로 어디쯤 함께 가실는지도 모른다.

진동규<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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