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 이야기
처남 이야기
  • 김창환
  • 승인 2011.12.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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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의 이야기이다. 처남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다. 나이는 근 50에 가까웠지만 교직경력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되었고, 그 전에는 잘나가는 공공기관에 10년을 근무했다. 부득불 그가 교사가 되려 할 때, 난 현직 교육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직에 오지 말라고 말렸다. 나만 말린 것이 아니다. 가족의 대다수가 반대했고 유일하게 작고한 장인만이 찬성했다. 처남이 정의로운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교직의 현실을 아는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말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처남은 교사가 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처남은 학교의 동료나 교직관행과의 이질성으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심지어 전교조 조합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핵심간부와 갈등을 겪었다. 전교조를 탈퇴했다고 했다. 처남은 분노했다고 한다. 자기가 대학 때 알았던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명문대라고 평가받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처남도 지난 80년대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골몰했다. 87년에는 무슨 장인가를 맡아서 경찰서에 가서 훈방, 구류를 먹고. 민주당사점거농성에도 참여하고 장인이 서울을 몇 번이나 올라가고, 담당형사가 집에 오기도 했다. 처남은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보다 나은 선배와 친구들이 지난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구속을 당해 어렵게 살지만 자기는 살아남아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는 학교에 와서도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고, 교직의 관행이 봉건적이라고 성토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늘 바쁘게 살았다. 내가 볼 적에는 웃기는(?) 일이었다. 가상하기는 하지만 처인 누님은 그의 건강을 걱정했으며 그는 여전히 세상에 대해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그렇게 인생을 살아갔다. 여전히 세상은 그의 눈에는 개혁의 대상이었으며 좋은 아이를 키워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믿음은 변치 않았다. 작년에는 그가 전북논술을 구조적으로 개혁해야 하겠다고 거리로 나가서 아이들을 무상으로 지도해야겠다고 했다. 논술에 대해서는 상당한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아온 처남이라 실력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지만 동생을 남다르게 사랑하는 처는 말렸다. “미쳤다고 했다.” “건강이 안 좋으니, 너 몸이나 잘 다스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갔다. 거리에서 아이들을 모았고, 그는 미친 듯이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는 아이들을 상위권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공교육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사변이 아닌 교육운동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겠다는 것’, ‘아이들의 꿈을 좋은 세상으로 연결하겠다는 것’. 지난 1980년대 군부정권에 싸우던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변호사가 꿈인 어떤 여학생이 논술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제안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서울대학교를 가려면 너에게 논술을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인권변호사가 되어서 소외된 민중을 위해 산다면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학생은 그렇게 꼭 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가르쳐 논술고사를 치게 했다. 8명의 아이가 시험을 쳤는데 지금까지 후보를 포함해 4명을 합격시켰다고 한다. 서울의 강남대형학원이 1%의 합격률을 보이는데, 기록적인 일이라고 했다. 공사교육을 막론하고 이것은 놀라운 결과였다.

처남이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떨어진 아이들이 문자로 합격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처남은 학생들에게 더 많이, 좋게 가르쳐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 학생과는 같이 울었다고 했다. 그 학생들은 처남과의 약속을 지켜 살고 싶어했기에 미안하다고 했다. 처남은 아직 예비합격자 발표가 남았기에 더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정말 처남이 그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었던 것은 좋은 가치를 따라 그들이 살며, 그러면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처남은 강조한다.“ 좋은 세상이 오게 하려면 교사는 공부해야 하며, 최고의 교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또한, “자신 있게 학원 가지마라 말해야 하며, 내가 가르쳐 줄게라고 해야 하며, 반드시 좋은 세상을 같이 만들어 가자고 해야 하며, 그것이 교육운동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운동은 다른 것과 달리 대상이 인간이자 주체도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반드시 투표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거대한 사변을 입에 침을 튀며 말하면서 실천은 자신의 이익에 기초해서 하는 이중적 진보를 하지 말라고 했다. 처남의 말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서있다.

김창환<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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