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기증문화 확산을 기대하며
미술품 기증문화 확산을 기대하며
  • 이흥재
  • 승인 2011.12.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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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계절에 비해 연말이면 기부나 기증에 대한 미담들이 훨씬 더 많이 전해지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분이 있으며 전주에서는 노송동에 얼굴없는 천사가 몇 년째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고 불우이웃을 도와 달라고 기부하고 있다. 그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창작극회에서는 ‘노송동 천사’라는 제목의 연극을 공연하기도 한다.

미술분야에 있어서도 세계 유수미술관들이 기증에 의해 중요한 소장품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913년과 1917년 세법제정을 통해 비영리기관에 기증·기부하는 후원자들에게 세금공제가 이루어지자 이를 계기로 1929년 록펠러 재단이 뉴욕현대미술관을 세우고, 1930년 휘트니 미술관, 1937년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웠다고 한다.

1959년 설립된 일본의 국립서양미술관은 마쓰카타 컬렉션 370점을 포함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회화 및 조각 등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품 수집가인 마쓰카타 고이지로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다. 이 미술관은 가와사키 조선소 사장이었던 마쓰카타 고이지로가 1920년대 말까지 유럽에서 수집한 미술컬렉션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쓰카타가 작품을 사들인 기준은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일본의 미술학도들이 꼭 봐야할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수집가인 하정웅씨는 1993년 이우환의 작품 12점 등 212점을 기증한 데 이어, 1999년에는 피카소와 샤갈의 작품 등 471점을 기증했다. 2003년에는 백남준·김창열 등의 작품 1,182점을 기증하였고, 2010년에는 359점을 기증 총 2,222점에 이르는 작품을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에 하정웅씨를 명예관장으로 위촉했고, 또 하정웅 청년 작가초대전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는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조선대미술관, 전남 영암군에 미술작품을 기증하여 메세나 정신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하정웅 명예관장은 1939년 일본에서 재일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한 뒤 공업고등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여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동경올림픽이 개최되던 해 컬러 텔레비전 판매를 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 후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미술품 수집에 눈을 떠서 재일교포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미술작품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1975년부터 부산공간화랑을 운영하는 신옥진씨는 부산시립미술관에 274점을 기증했다. 이때 기증한 유럽근대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유트릴로의 작품은 국내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다. 신옥진 대표는 화랑을 운영하면서 미술품을 상업적 이윤추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산업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알리고 대중과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로 삼고자 했다. 또한, 경남도립미술관에도 이우환의 작품 등 239점을 기증하였으며, 경남도립미술관은 보다 많은 사람이 기증작품을 볼 수 있도록 특별전과 도록을 발행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는 석전 기념실이 있다. 1999~2002년에 황병근 우리 문화진흥회 회장은 선생의 선친인 석전 황욱의 서예작품과 소장하고 있던 고서류, 서화, 간찰, 고미술품, 민속품 등 5,000여점을 기증하였다. 국립전주박물관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기증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02년 기증유물을 전시하는 석전 기념실을 따로 마련하였으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황병근 기증 간찰 자료집 4권을, 2008년에는 석전 선생의 서예작품을 모아 ‘석전 황욱 서예’를 간행했다. 또 2009년의 ‘기증유물 목록집’에는 그간 발간한 간찰과 석전 서예를 제외한 전적 등을 분야별로 나눠 사진자료로 소개하고, 기증유물 전체목록을 실은 자료집을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 배포 많은 사람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황병근 선생의 문화재 기증은 앞으로 소장가들의 문화재 기증 유도에 커다란 기폭제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2월 5일부터 1월 29일까지 “아름다운 만남: 기증작품 특별전”을 열고 있다. 197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한 사람은 150명이고 기증작품은 3,045점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소장품 6,749점의 45%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 전북도립미술관도 소장품 992점 중 하정웅 관장이 기증한 246점을 비롯한 509점이 기증작품이다.

사실 연간 미술품 구입예산이 40억원도 채 안 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럴진대 지방의 국공립미술관은 어떠할까? 전북도립미술관은 연간 작품 구입비가 2-3억원으로 국공립미술관 중에서 가장 적은 편이다. 심지어 강원도 양구군 군립미술관도 작품 구입비가 10억원이라고 한다. 물론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에서는 박수근선생 작품을 한점만 구입하려고 해도 그 정도 예산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처럼 넉넉하지 못한 작품구입예산으로는 훌륭한 작가들의 우수한 걸작들을 맘 놓고 구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나 작품수집가 즉 컬렉터들의 통큰 기부가 이루어질 때 시대별 작가별 장르별 특성을 잘 살린 미술관 소장품을 확보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도내에서도 보다 활발한 미술품 기증문화가 확산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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