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언어 생활
올바른 언어 생활
  • 이동희
  • 승인 2011.12.11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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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받은 어느 초대장에서 어이없는 문구를 보았다. 하객들을 초대하는 내용을 담은 글이 ‘초청의 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어느 행사장에 가보니 당일 행사의 내용을 담은 유인물에 ‘인사의 말’이라고 인쇄되어 있고, 사회자나 연단 앞에서 연설하는 주최자도 인사의 말이라고 발음하여 실색을 금치 못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이나 말 부림을 보고 듣노라니 이들에게 ‘말’은 겸양어-낮춤말이고, ‘말씀’은 공대어-높임말이라는 생각이 의식 깊이 배어 있는 듯하였다.

어떻게 자기가 하는 말을 남에게 스스로 높여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아무 고민 없이 여러 청중 앞에서 혹은 개인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 ‘말’이라고 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 ‘말씀’이지, 겸손하고 교양 있는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말씀’으로 자칭 높일 수 있느냐고 단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름대로 식견이 출중하고 지위가 남다른 분들임에도 이렇게 어긋난 언어구사-말 부림을 예사로 하는 것은 말밭을 탐구하려는 아주 쉬운 노력을 하지 않는 결과임은 뻔하다. 내가 하는 말을 ‘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말씀’이라고 해야 할까? 고민이 될 때는 주머니용 국어사전을 가까이 두고 그저 펼쳐만 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데에 잘못이 있다.

어느 국어사전을 펼쳐 봐도 ‘말씀’은 큰 차이 없이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말ː씀】①어떤 사람을 높여, 그 사람의 말을 이르는 말 ②상대방을 높여, 자기가 하는 말을 낮춰 이르는 말. 그러니까 ‘말씀’은 상대를 높여 그의 말을 높일 때에도, 상대를 존중하여 나의 말을 낮출 때에도 ‘말씀’이라고 써야 옳은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잘못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기필코 과공에 해당하는 말 부림이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하지 않던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심지어 어느 인사는 중등학교 국어교사이자 문학담당 교수인 필자에게, 대중 앞에서 자기의 말을 지칭할 때 ‘말’이 옳으냐? 아니면 ‘말씀’이 옳으냐? 물어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음에도 한사코 ‘말’을 고집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이는 가장 정확해야 할 언어의 구사에 인격적인 겸양의 미덕을 생각 없이 접목한 데서 오는 잘못이다.

요즈음 어느 TV방송국에서『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극적 재미와 고전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접목하느라 과장되고 허구적인 장면들이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도 한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 나라와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자를 지닌다는 것이 문명사적으로나, 혹은 사람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전혀 부재하던 하나의 문자를 만드는 일과 이를 사람들이 부려 쓰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를 시청자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의도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세종께서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밝힌 새 문자 창제의 취지-‘어지(御旨)’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랏 말?미 ?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 간단 명료한 취지를 살려서 한글이 보다 완벽한 문자로 바로 서게 하고, 생활 언어로 올곧게 활용하게 하며, 나아가 세계적인 언어로 힘을 얻게 하는 몫은 이제 후손들 우리의 몫이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문자’, ‘언어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체계를 갖춘 문자’, ‘IT시대에 가장 걸맞은 컴퓨터 문자’라는 찬사를 귓전에 흘린 채 외국어 학습에 몰입하는 작금의 열풍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 의식들이 지배하는 한 ‘말’과 ‘말씀’을 구별하지 못한 언어생활이 우리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하긴 나라의 백년지계에 해당하는 교육정책에서 국어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해 볼 때,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 외국어 학습에 쏟아 붓는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용을 볼 때, 나랏말씀이 제대로 발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겠다. 국민을 향한 최고 지도자의 발표 내용을 ‘말씀’으로 헤아려 듣지 못하고 ‘말’로 격하시키는 풍토는 제 나라 말씀을 업신여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나랏 말?이 혼탁하면 사람의 마음도, 사회의 기강도 혼탁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동희<시인·전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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