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99%
We Are the 99%
  • 이상직
  • 승인 2011.12.0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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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7일, 90여 명의 미국 청년들이 텐트를 치고 월가를 점령했다. 이들은 “우리는 99퍼센트다(We Are the 99%)”라고 외쳤다. 그리고 3주 만에 수천 명이 사람들이 이들의 시위에 동참했다.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는 “용감하고 명예로운 저항을 계속 이어가 달라”며 지지를 보냈다. <델마와 루이스>의 배우 수잔 서랜든도 이에 동참했다.

2007년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그 후유증으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미국발 금융 쓰나미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 세계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미국 금융자본의 상징인 ‘월가(Wall Street)’가 있다. 월가의 금융자본은 모든 위기를 정부와 국민에 떠넘겼다.

위기는 반드시 대가를 부른다.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기업을 인수하거나 정리했다. 국민은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되거나, 임금이 줄어드는 고통을 받았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 위기를 겪었을 때처럼. 1%가 만든 과오에 대한 책임을 99퍼센트의 시민들이 떠안은 것이다. 여기에 월가의 금융자본은 잠시 반성하는 듯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지만, 금세 모든 것을 망각했다. ‘1퍼센트 월가의 탐욕’은 여전히 건재한 것 같다.

월가를 점령한 청년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실업과 빚더미 그리고 불안한 미래다. 그래서 지금 미국의 청년들이 외치는 것이다.

“우리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간 특정한 1퍼센트가 있다.”

“우리의 미래를 거래하지 마라.”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숫자, 우리는 99퍼센트다(We Are the 99%).”

극심해지는 빈부 격차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시위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80여 개국 9백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사회의 양극화를 이야기하면서 상위 20퍼센트와 거기에 끼지 못한 80퍼센트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1퍼센트와 99퍼센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반(反) 금융자본, 반(反)월가을 중심에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더욱 심해지고 있는 계층 간 양극화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 고착화되면 사람들은 ‘계층’이라는 표현보다는 ‘계급’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과거 봉건시대는 분명 부와 권력을 독점한 1% 귀족이 99% 백성을 지배하는 ‘계급사회’였다.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촉발된 시민혁명은 수백 년 세월을 거쳐 20세기에는 세습 왕조가 아닌 국민이 선출하는 정부의 시대가 세계적으로 일반화됐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1%가 99%보다 많은 것으로 갖고 있는 시대이고, 그 1%는 경제적 부를 권력화 시켜가면서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1%가 99%를 움직이고 있다. 기술발달 덕분에 보편적인 사회적 기준에서 삶의 질은 향상됐지만, 이는 포장지만 화려해졌을 뿐 내용물은 여전히 봉건시대의 유물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월가점령’ 시위가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얼마 전 워런 버핏은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자신과 같은 부자보다 일하는 직원들에게 부가되는 세율이 더 높은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주장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다. 물론 개인의 선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래도 신선하다.

하지만, 눈을 국내로 돌려서 보면 슬프다. 한국에서는 워런 버핏과 같은 부자들의 양심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재벌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외치면서도 기부와 복지에 인색하고 부자 감세 철회에 반대한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율을 보면 대기업이 1퍼센트이고 중소기업이 99퍼센트다. ‘We Are the 99%’의 원조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LA와 필라델피아의 ‘월가 점령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되면서 월가의 텐트시위는 73일 만에 경찰에 의해 모두 공원 밖으로 내몰리게 됐다.

하지만, 99%의 젊은이들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공원에 대형 천막풍선을 띄우는 등 새로운 방법의 항의를 모색하며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월가의 텐트시위가 단순한 헤프닝이라면 큰 오산이다.

대한민국의 99%도 월가뿐 아니라 세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직<이스타항공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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