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K선생님의 수학수업
<72> K선생님의 수학수업
  • 문창룡
  • 승인 2011.12.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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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K선생님의 수학수업

며칠 동안 교육실습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듯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같은 아이들과 수업을 해도 수업하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맛이 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며 유채색을 띠는가 하면 무채색을 띠기도 한다. 이렇듯 수업에는 그만의 색깔이 있다.

교육실습생들의 수업은 무엇보다도 순수해서 좋다. 그림으로 치면 유화보다는 수채화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독선과 편견을 찾을 수 없다. 통학버스를 기다리면서 발을 동동거리는 학생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며 먼 훗날 원숙한 수업을 후배들에게 보여 줄 멋진 교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왕이면 각자의 수업마다 좋은 점들을 찾아 칭찬해 주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그들의 순수함도 맘에 든다.

같은 기간에 정부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교와 성적이 좋은(?) 지자체를 공개했다. 언론에서는 어김없이 ‘~의 기적, ~의 반란’하면서 학생들의 성적이 오른 학교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몇 해 전 임실의 기적이 재앙(?)으로 변하던 장면을 목전에서 경험한 필자로썬 그들의 기적과 반란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정말 학교에 기적이나 반란이 존재하느냐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앞에서 말한 교육실습생들의 수업은 그다지 주의 깊게 볼 가치를 못 느낄 것이다. EBS강사처럼 유창한 언변으로 최적의 문제 풀이를 해나가는 수업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실습생들의 수업과 같은 작은 정성이 하나 둘 모여서 잔잔한 감동과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교육실습생들이 수업이 예뻐 보이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날도 교육실습생인 K선생님의 수학수업을 참관했다. K선생님은 열정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까? 한 학생이 K선생님의 수업에 딴죽을 걸었다. “선생님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좀 더 어려운 문제없어요?” “그래? 그럼 이 문제를 풀어봐.” 당황한 K선생님이 애써 태연한 척 돌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피, 쉽다.” 그 학생은 답을 말해 버리고는 필통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이내 손장난을 시작했다.

필자는 딴죽을 건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녀석도 긴장하는 듯 손장난을 멈칫했다. “이름이 뭐야?” “왜요? 제 이름은 L이예요.” “문제가 너무 쉬워?” “공부방에서 문제집을 푸는데 저거보다 어려운 문제도 다 풀어요.” 아닌 게 아니라 L은 자신의 교과서에 미리 답을 다 달아놓고 있었다. 필자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은 채 L옆에서 K선생님의 수업을 계속 참관했다. 그때서야 L도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그리고 시간이 잠시 흘렀을까? L이 K선생님의 문제풀이과정에 다시 딴죽을 걸었다. “선생님! 그러니까 그것이 시계방향인지 시계반대방향인지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L의 질문에 K선생님도 필자도 잠시 긴장하고 문제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문제는 시계방향과도 반대방향과도 관계가 없었다. L은 자신이 다니는 공부방용어로 자기반 학급수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L의 질문에 대해 K선생님은 차근차근 문제를 다시 설명해주었지만 L은 끝내 마음에 내키지 않아 했다. 우리는 지금 잘못된 정부정책과 학생들의 선행학습이 교실수업을 망가뜨리는 중요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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