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축사하겠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먼저, 도립미술관 측의 배려에 감사했다. 미술관 입장에서 대학생들의 초청전시회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흥재 도립미술관장도 학생들에게 전시공간 제공하는 게 전시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반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관장은 미술관이 미대생들에게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공공 공간은 기본적으로 공중(公衆)에 제공된 공간이다. 공중이 누구인가는 학자들의 토론에 맡기자. 도립미술관은 전라북도민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게 상식이다. 거장들의 전시가 도립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걸맞을 수 있겠지만, 미대생들에게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관장의 생각이 상식에 부합된다.
학생들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을까? 이관장은 미술관에서 졸업전시회를 한다는 게 쉬운 경험은 아닐 거라고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지금은 별 게 아닌 걸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훗날 미술관의 전시공간이 필요해졌을 때, 그 문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기회를 가지게 된 학생들은 긍지를 가져도 된다.
전시회에 작품을 건 학생들은 축하 받을 만하다. 졸업전시회는 대학생활의 결산. 많은 학생 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열심히 대학생활은 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학생들이다. 그들의 수준을 평가할 능력은 내게 없지만, 어느 집단에서건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안다. 더욱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작품 비교는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들에게 무슨 말이 축사가 될까? ‘젊음이 좋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젊음이 왜 좋은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있겠지만, 그 말이 가슴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나이 때 내가 그랬고, 젊음이 좋은지는 나이가 들어봐야, 또 젊음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절감하는 단어이기에 그렇다.
그 좋다는 젊은 시절에 무얼 해야 하나? 나는 모든 것에 반란(叛亂)을 일으키라고 주문했다. 눈 앞에 있는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강요되는 상식을 거부하고, 배운 것 모두까지를 박살내는 반란을 일으키라고 당부했다. 은혜를 모르는 건방진 젊은이라는 소리도 듣고, 주제파악 못하고 까분다는 비난도 받겠지만, 그 반란이 없다면 내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반란은 개인을 위해 시작하겠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단초로 평가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말로 하기는 쉽다. 나이깨나 먹은 사람은 그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쉽게 할 수 있는 얘기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얘기인 줄도 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나름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좌절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러진 반란의 깃발을 안고 기득권의 벽 앞에서 거꾸러져야 했는가?
여러 질문이 머리를 누른다. 문화는 생활의 여유에서 나온다는데, 팍팍한 요즘 세상에서 이들은 자신의 예술혼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들에게도 힘든 생활전선에의 진입은 가능할까? 더 근본적 의문, 기본적 생활이 어려운 예술가에게도 반란은 가능한 것일까? 반란 종용이 무책임한 일은 아닐까? 생각하는 게 많아진 나이 든 사람의 고민이다. 다시 머리를 스치는 해답, 원래 젊은 예술가의 반란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왔다. 결론은 다시 “손해 볼 것 없는 당신, 모든 것에 반란을 일으켜라!”. 미술을 하는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김대곤<원광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