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산마루에 올랐더니'
'어느날 산마루에 올랐더니'
  • 김미진기자
  • 승인 2011.11.1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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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화가 김세견씨
“어느 날 산마루에 올랐더니 하나님이 그림을 그리시더군요. 거대한 하늘을 캔버스 삼아 하얗던 구름을 노란색으로, 분홍색으로, 빨간색으로 그리고 검정색의 하늘을 그리시는 경이로운 모습에 자연의 미미한 존재일 뿐인 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양화가 김세견씨가 지난 2000년 개인전을 갖은 후 11년 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훗날 자신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이라고 할까. 김씨가 좋아하는 수채화와 수석, 글들을 조그마한 책으로 엮어 지인들을 초대하기로 한 것이다.

건강의 악화로 2003년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2009년 또 한 번 쓰러지는 아픔을 겪었던 그는 무엇인가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10년의 공백 기간을 두다 보니 자신이 변해온 과정과 작품세계를 알릴 길이 없어 가슴이 아팠던 화가. 그는 지난해 봄 떠오른 영감으로 작업에 매진해 2년여 만에 옥고를 토해냈다.

수 십 년 동안 그려온 그림이지만, 새 삶을 얻은 이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정신을 놓으면서 쓰러졌던 당시에도 ‘손가락’의 움직임을 확인했던 작가정신. 붓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인했던, 그의 의지가 새삼 숙연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건강이 호전될 때면 그는 그동안 살아온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추억을 곱씹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500여 편에 이른다. 이 중에 몇 가지 에피소드를 골라 에세이집 ‘어느 날 산마루에 올랐더니(모노그래픽스)’를 내놓았다.

4살 때의 기억부터 사촌누나와의 추억, 풀과 벌레가 숨 쉬던 고향마을, 무명화가로서의 고생까지 그의 삶의 편린들이 담겼다. 글 쓰는 일도 유독 좋아했던 김씨의 고등학교 시절 꿈은 소설가이기도 했으니, 그의 작품과 함께 할 수 있는 그의 글은 감칠맛이 난다.

에세이집을 살펴보니 중환자실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셋째 딸의 스케치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사실 살아오면서 별스럽게 어려운 일도 많았다. 아프기도 유독 많이 아팠고, 대형 교통사고도 당했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했던 적도 많았고, 늘 언제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던 화가.

새로운 삶을 얻게 된 탓일까. 그의 작품 또한 많이 변했다. 과거에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는데 집중했다면, 이제 그의 그림은 우주를 담기 시작했고, 휴머니스트적인 감성을 대입한 모습이다. 다시 말에 삶의 소중함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 더 이상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이 구축하는 세계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또 자연석을 모으는 일을 좋아하는 그는, 돌 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차용해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를 담아내기도 했다.

물론 그의 장기인 수채화의 미학은 함께이다. 이번 에세이집 출간과 함께 치르는 개인전(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초대는 16일 오후 5시)에서 수채화로는 보기 드문 대작인 200호 크기의 ‘뒷동산의 겨울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의 스물 두 번 째 개인전으로 늘 반성하고 깨어있어 청정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화가의 소박한 꿈이 담긴 전시다.

김미진기자 mjy308@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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