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와 제초제
가습기 살균제와 제초제
  • 김형준
  • 승인 2011.11.09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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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와 영유아를 잇달아 사망케 한 원인미상의 급성 폐질환의 원인이 결국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동안 산모나 영유아를 중심으로 가벼운 감기 같은 급성 호흡기 증상이 발생한 후 점점 악화되어 결국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치명적인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이 아닌가하며 보건당국, 의료계 등을 긴장을 시켰던 문제가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6개월간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케 한 쥐 실험에서 국내 시판 두 가지 제품에서 폐 섬유화가 진행된 것이 관찰된 것이다. 폐 섬유화는 처음에는 기침, 가래 같은 가벼운 감기 증상처럼 시작되나 폐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굳어가면서 호흡곤란, 흉통, 혈담 등의 증상으로 진행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병으로 폐 이식 외에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무서운 폐 질환이다.

가습기 살균제 영유아 피해 매우 커

지금까지 같은 사례에 의한 사망 피해접수 현황에 따르면 사망자는 태아 1명을 비롯해 영유아 14명, 소아 2명, 산모 1명 등 모두 18명으로 주로 영유아 피해가 매우 컸으며 전체 피해 추정 사례는 약 50명으로 보고되었다고 한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전체 피해사례 절반에 달하는 26명은 2~4명씩의 가족 피해자로 함께 생활하는 가족 단위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일부 보건관련 시민단체에 따르면 해마다 수백 명의 영유아의 급성 호흡기 관련 사망자로 사망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그중 상당수가 이러한 가습기살균제의 피해 사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한다. 사실 임산부와 영유아가 있는 집이라면 겨울철 건조한 습도를 위해 누구나 한번쯤은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우리 가족도 어떤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지 매우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유독 소아천식으로 고생했던 필자의 아이도 겨울이면 가습기와 함께 지냈기 때문에 이번 보건당국의 발표는 의사인 나로서도 적잖이 충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도시지역보다 농촌지역 자살률 높다

그라목손(성분명 파라쿼트)이라는 제초제가 있는 데 음독 자살환자를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는 약물이다. 한모금만 마시거나 심지어는 입에 머금고 뱉기만 해도 거의 100% 사망한다는 맹독성 제초제이다. 그런데 대부분 소량을 마신 경우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전혀 증상이 없다가 1~2주에 걸쳐 서서히 폐 섬유증이 진행되면서 죽어가기 때문에 당장 정신이나 신체가 멀쩡한 환자에게 앞으로 얼마 후 서서히 당신은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의사로서의 난감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도시지역보다는 농촌지역의 자살률이 높다. 농촌지역의 자살시도는 대부분 농약에 의하며 2009년 기준 전체 자살사망자 가운데 67.7%가 제초제와 살충제에 의한 사망으로 제초제의 경우 대부분 그라목손에 의한 경우이다. 실제로 부부싸움이나 술 등으로 실제 자살할 생각보다는 충동적으로 자살시늉을 한 것뿐인 경우에도 그라목손은 100% 사망케 하기 때문에 가히 “죽음의 제초제”라 불리고도 남을 만하다. 이런 이유로 EU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생산,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유통이 되고 있고 심지어는 올해 9월경 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 주변 제초작업에 살포한 것으로 국감에서 나타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의사협회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올 12월부터는 생산이 정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 해독성에 대한 대중적인 홍보도 체계적 조사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음독한 경우 외에 무방비로 공기 중에 살포되어 간접적인 흡입 된 경우 나타날 위험성에 대한 어떠한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도 없어 실제 피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 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건당국은 가습기 살균제외에도 방향제, 해충용 각종 스프레이 제품, 세척용 세제 등등 이러한 용품에 대한 대대적인 안정성 실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래서 이번 사태처럼 이미 수십 명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가 발생한 후 이루어지는 뒷북식의 대응은 이제 제발 그만 보고 싶을 뿐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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