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일본 미술관 기행
5일간의 일본 미술관 기행
  • 이흥재
  • 승인 2011.11.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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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일본미술관 연수를 다녀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일본의 미술관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건물의 외관에서부터 전시와 운영체제, 나아가 관람자의 의식과 일본의 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였다.

맨 처음 찾은 곳은 동경의 21-21세기 미술관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다다오가 지은 미술관은 그의 명성만큼 특별했다. 지하에 공간을 배치하고 노출 콘크리트 벽면으로 처리한 전시장의 구성은 미로를 연상케 했으며, 심지어 영상실에 놓여있는 의자마저도 미술관 건축조형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세밀한 부분까지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점이 감동적이고, 인상 깊게 남는다.

하꼬네에 위치한 폴라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인상파 작품을 비롯하여 소장품이 9,500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내년 초 예정인 “인상주의”전시는 소장품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소장품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 졌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분야를 다루는 전문 미술관을 만날 수 있어 더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동경에 있는 모리미술관에서는 건축을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라는 주제로 1960년대 이후 일본의 독특한 건축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전시이다. 미술사에는 조각, 회화, 공예뿐 아니라 건축도 이에 속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건축전시는 생소하다.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일본은, 국가에서 국립사진박물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사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립미술관을 보며, 국가의 이미지와 브랜드가 문화를 통해서 더욱 굳건할 수 있게 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요코하마 미술관에서는 트리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관계자에 따르면 트리엔날레는 2년을 준비해서 1년 전시를 한다고 한다. 1년 준비, 1년 전시하는 비엔날레에 비해 훨씬 여유가 있었다. 전북에서 트리엔날레를 기획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긴 시간 준비하기 때문에 전시는 더욱 깊이가 느껴졌고, 볼거리도 풍성하고 다양했다. 심지어 안내데스크에 다음 전시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우리네 미술관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많은 전시를 하기 위해 짧은 기간 촉박한 일정에서 준비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동경에는 국립서양화 미술관, 근대미술관, 신미술관 3개의 국립미술관이 있는데, 두 미술관이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신미술관은 미술관 소장품도 없이 전적으로 대관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국전과 같은 대형 전시를 위해 69개 단체에 대관을 해주며 2주일에 100만 엔의 대관료를 받는다. 또 신문, 방송 등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기획전시를 하는 공간이 따로 있고, 현재는 요미우리 신문이 주최하는 미국 워싱턴의 필립스콜렉션을 전시하고 있었다. 1천100만 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하는 신미술관의 운영에 있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레스토랑을 프랑스인에게 임대해서 미술관 안에서 정통 프랑스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국·공립 미술관 운영과는 다르지만, 시대에 맞게 요즘의 세대와 문화의 기호에 맞게 발맞추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미술관 히데끼 관장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는 5천500여 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총 미술관 관람객 수는 6천만~7천5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일본 인구 1억 2천만 명의 절반 이상이 미술관을 들른다는 얘기다. 그는 미술관 운영의 성공사례로 가나자와에 있는 21세기 미술관을 꼽았다. 21세기 미술관은 학교와 연계하여 초·중·고등학생들을 1년에 한 번씩 꼭 미술관을 관람하도록 하고 있고, 미술관 주변 상권과 적극적인 연계를 통해 미술관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성공의 이유라고 말한다.

국립서양화 미술관에서는 고야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별기획전 이외 상설전시장에서는 수없이 많은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명화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조그마한 전시실 하나는 전체가 모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술관 야외에는 로댕의 ‘지옥의 문’ 딱 한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아우라는 다수의 작품을 충분히 채우는 듯했다.

한편, 전시실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라는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 진다 하는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조용히 작품 감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또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 혹은 노부부가 나란히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은 필자에게 또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본 문화의 단편만을 보았을 테지만, 기행하며 미술관 건축에서부터 전시의 규모, 운영체제와 관람객들의 다양한 연령층, 그리고 문화예절의 차이까지 그들의 문화의식과 수준이 우리와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미술관 문화에 관한 한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우리 미술관에서도 내년부터 전북에 있는 학생들을 1년에 한번 정도는 꼭 미술관에 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야겠다. 아이들의 문화의식수준을 높이는 일에, 나아가 도민들의 문화향유에 더욱 앞장서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도 일본보다도 더 나은 미술관과 미술 문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해 본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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