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산 선비문화의 병요창의
<기고> 태산 선비문화의 병요창의
  • 김상기기자
  • 승인 2011.10.20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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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은 1906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창의를 주도했던 곳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당시 전북에서 훼철되지 않은 유일한 서원이다. 배향 인물로는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이다.

주벽으로 모신 최치원 선생은 통일신라말 대유학자로서 886년 지금의 칠보를 포함하는 태산현의 태수로 부임해 왔다. 선생은 한시 문학과 시가 문학을 이 고을에 다져 놓았고, 뒤를 이어 불우헌 정극인 선생은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통해 태산풍류를 완성시켰다.

이후 절조 높은 호남 성리학의 대가 일재 이항 선생이 제자들을 지도했고, 그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힘썼으니 대표적인 인물이 김천일, 김재민, 변사정이며,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하게 옮겨 역사를 오롯이 보존시킨 선비 안의와 손홍록도 그의 문인이었다.

이와 같이 태산지역은 예로부터 충과 효가 살아있는 유학적 선비기질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고장이다. 1906년 최익현을 맹주로 임병찬, 김영상, 김기술, 김직술 등이 창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태산고을 무성서원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고 있는 올곧은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안성열 관장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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