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삶과 국격(國格)
시인의 삶과 국격(國格)
  • 이동희
  • 승인 2011.10.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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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재 박병순 시조작가를 생각함

구름재 박병순(1917년~2008년) 시조작가는 진안 부귀면 출생이다. 살아생전 오로지 시조문학에 정진하며 이 나라 유일한 전통 시가의 맥을 잇는 데 헌신하신 분이다. 구름재 선생이 가신 지만 삼년이 되는 때를 맞아 고향 진안군에서는 낡고 초라하게 그 형해(形骸)만 남아 있는 선생의 생가에 <구름재 문학관> 건립의 뜻을 세우고 그 취지를 널리 알려 뜻있는 분들의 동참을 구한다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한 나라의 됨됨이를 일컬어 국격이라 한다면, 국격을 이루는 근본 바탕은 국민 개개인이 지향하고 있는 사람됨의 궁극적 결정체인 인격과 다를 바 없다. 나라를 이루는 기본 요소인 국민의 품격, 곧 인격이 국격의 기본 요소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바, 국민 각자의 인격적 총화(總和)를 일러 국격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격의 바탕이자 핵심 요소로서 국민의 인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필자는 항상 시조작가이신 구름재 선생을 떠올린다. 그의 고결한 품성과 이를 실천하는 정신력, 그리고 현실 속에서 흔들림 없이 내면의 가치를 향해서 매진하시던 모습에서 국격의 바탕으로서 인격적 귀감을 삼아도 좋을 것이다.

구름재 선생은 평생 동안 교육자의 인격을 사표(師表)로 실천하며 사신 분이다. 전주사범 부속초등학교에서 평교사로 출발하여 전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봉직하는 40여 년, 혹은 전주대학교와 한양대학교 등 대학에 몸을 담고 계시는 동안 올곧은 사도의 본을 보인 숱한 일화를 남기신 분이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구름재 선생이 얼마나 치열하게 스승의 위엄과 진솔성을 보이기 위해서 애쓰셨던 분인가 알 수 있다. 학생들의 출석을 번호로 부르지 않고 일일이 이름을 호명하시던 모습에서 어린 학생들을 인격체로 대접하려 했던 선구적 교육자상을 엿볼 수 있으며, 교과와 함께 인성교육을 병행하고자 매 수업 시간마다 시를 한 편씩 낭송하시던 모습에서, 오늘날 기능주의적 교육계에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구름재 선생은 국학자의 인격으로 우리 것을 존중하신 분이다. 시조는 우리의 고유한 운문형식이다. 국문학사를 통틀어 숱한 문학양식들이 명멸하고 있지만, 시조만은 고려 말에 발생하여 현재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은 고유한 시가양식이다. 시조가 이렇게 자리매김하기까지, 그리고 시조가 현대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 동력은 우리 고장 출신 가람 선생의 업적과 그분의 시조문학 수제자로 일컬어지는 구름재 선생 같은 분의 노력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선생께서는 단기(檀紀)와 한글 쓰기를 고집스럽게 실천해 오신 분이다. 서기(西紀)가 일반화된 현대까지도 선생께서는 원고의 말미에 단기를 분명하게 명기하며 국체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끈질기게 노력하셨다. 이와 함께 선생은 한글사랑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공로로 <한글학회 창립 100돌 기념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말 지킴이’로서의 사명감을 잠시도 놓지 않은 타고난 국학자이셨다.

구름재 선생은 선비정신의 화신이기도 하셨다. 필자가 한 때 <표현문학회>의 살림을 꾸렸던 적이 있다. 이 문학회의 회원지인『表現』의 회원이기도 하셨던 선생께서는 매년 정초가 되면 원고지에 (필자가 판단하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체가 분명한 서체로) 손수 쓰신 원고, 당해 연도 연회비에 해당하는 우편환, 그리고 문안 서찰을 동봉하여 보내주시곤 하였다. 이 원고가 든 신년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이 어린 후배 문인이나 수하에게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진중하신 예의범절을 대하며 항상 마음의 옷깃을 여미곤 하였다. 이런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선생께서는 11권의 시조집과 함께 1천여 편이 훨씬 넘는 시조의 유산을 남기셨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이건 나라건 품격을 논하기 매우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에게서 보통국민보다 못한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인격 부재를 실감한다. 지도적 인사들의 형편이 이러하니 국민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 인격의 도야를 통해 품위 있는 국격을 유지하도록 힘써야겠다.

그 해답을 구름재 선생에게서 찾는 일은 그래서 뜻이 깊다. 국민의 사표가 되려는 교육자상, 우리 것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실천하는 국학자로서의 면모, 정신문화의 소중함을 실천하는 선비정신의 현대화를 통해서 인격과 함께 국격도 닦아야 하겠다.

이동희<시인·문학박사·전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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