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
  • 진동규
  • 승인 2011.10.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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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성묘 뒷끝에도 구시포에 들렀다. 성묘 끝나 갈 길이 바쁘니까 어서들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작은집 가족들은 새벽에 출발한 성묘길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기회다. 하긴 작년 추석도 재작년 추석도 그랬다. 선운사쯤 방 하나 얻어 들었지 않았는가. 막걸리 몇 잔 나누고 새벽길 떠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귀성전쟁이라고 하지 않던가.

구시포! 이 아담한 바다를 밥그릇으로 보았다니, 옆으로 이어진 명사십리는 ‘사반리’다. 이 모래 밥상에 놓여진 밥그릇이라니 명사십리가 모래 밥상이 되고 구시포는 거기 푸짐한 밥그릇이 되는 셈이다. 구시란 소나 돼지의 밥그릇을 일컫는 명사다. 일제 때 공출당했던 놋그릇만 그릇이 아니다. 하이얀 사기그릇만 그릇이 아니다. 가마솥에 끓여내는 쇠죽은 이 구시통 가득 퍼담아야 콧바람 푸푸 불어대면서 들이키고 힘을 쓰지 않겠는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그림동아리를 한 일이 있었다. 풋풋한 열기로 모인 첫모임이었다. 그때 잊히지 않는 그림이 하나 있다. 작은 소반 위에 비인 사발 하나 그려낸 것이었다. 섬뜩했다. 엄숙함이라기보다는 쉬 단정지어버릴 수 없는 쭈뼛 뻗쳐오르는 묘한 기운 같은 것이다. 시골 밥상은 다독이고 다독여서 고봉으로 지은 밥그릇이어야 하지 않았던가.

겨울을 나야 하는 김치들도 있다. 한 독은 땅에 묻고 부엌이나 헛간에는 무 구덩이를 파고 무청이 날 때까지 덮어두었다. 일 년을 두고두고 다독거리고 다독거리는 간장, 된장 항아리도 있다. 그런데 구시는 그렇게 계획하여 준비한 그릇이 아니다. 그냥 퍼 담아도 흉 되지 않는다. 그것이 흉 되지 않는 그릇이다. 따로이 모실 일도 아니다. 대중이 모두 함께 모여드는 그릇이다. 그러나 소여물처럼 당당하게 차지할 만한 내 밥그릇인 것이다.

구시포에서 십여 리쯤 떨어진 곳에 구시내가 있다. 최초 동학군의 집결지다. 거기서 황새 건너다볼 만큼이면 ‘구수마’다. 참 재미있는 마을 이름이다. 내 칠대조 할아버지 선산 혈처가 소가 앉아 있는 형국인데 그 바로 앞마을을 이름 한 것이다. 잔등에 얹어야 할 질마 대신 ‘구수마’를 짊어지고 왔다는 뜻으로 축약되어진 복합어인 성싶다.

지명이 무단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자주 들어왔다. 용담댐을 막고 거기 다 먹고 마실 만한 용담이 될 것을 어찌 알고 그 옛날에 그런 이름을 지었느냐는 그런 이야기다. “내 밥그릇 내놓아라.” 말은 안 했지만 꾸역꾸역 모여든 동학군들이 구수 안으로 구수 안으로 당당하게 발길들을 모았던 것이 아니었던가.

구수는 그래야 한다. 궁색해서는 안 된다. 넉넉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는 아니다. 물짜서도 안 된다. 소는 그 집안에서 가장 대접받는 상일꾼이 아니던가.

구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땅이어야 한다. 그만한 그릇에 그만한 먹거리가 담겨야 한다는 말이다. 내용이 부실하면 허명이다.

낙동강변에 땅콩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땅콩값은 고창에서 정한다. 물 잘 빠지는 모래밭이라야 하던 땅콩이 황토박이 고창 것이라야 제맛이다. 고창 것은 볶아먹지 않고 날것 그대로 먹어야 제맛이 아니던가.

땅콩 캐면서 곧 수박이다. 고창 수박은 쩍 갈라지는 소리가 다르다. 칼을 대는가 싶으면 쩍 갈라지면서 내어지르는 소리가 있다. 선홍빛이 아니다. 선홍이 서릿발로 뻗쳐내는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을 느끼면서 맛을 논하는 것이다. 고창 수박은 상표를 보면 안 된다. 내가 직접 따야 한다.

미당 생가에 갔을 때 ‘내놓을 것이 없어서…….’ 서정태(미당의 제) 시인이 열없어 하시면서 차려내시던 소반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물가에서 뜯어 오신 갓 잎 한 주먹에 복분자 한 주전자다. 뒤집어지고 말았다. 갓 잎사귀 하나 쌈으로 넣는데 코에서 눈에서 눈물이 먼저다. 거기 요강단지가 뒤집어진다는 복분자는 덤이다. 결국 동네 우물까지 다 뒤집어 놓다니.

구시의 땅이 고향이고 보니 자랑 같은, 정말이지 못난 치기 같은 것이 좀 삐뚜름 불거진 것 아닌가 싶어 쑥스럽지만 이것이 내 촌티인 걸 어쩌랴. 끝내 이 말은 숨기려고 했는데 마저 해야겠다.

풍천 장어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중학교, 아니다, 군에 갈 때까지도 논두렁 물꼬자리에서 잡아댔다. 팔뚝만한 장어 한 마리 고추장에 구워내면 막걸릿잔은 그냥 따라왔다.

물줄기 뻗치면 어디고 펄떡펄떡 튀어 나오는 것이 풍천장어였다. 그것들은 항시 집게발을 쩍 벌린 뻘떡기랑 함께 딸려 나오곤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고창을 찾는 이들에게 “장어 드시지 마세요.” 한다. 눈 휘둥그렇게 쳐다보면 “비싼게요.” 나는 준비했다는 듯이 쏘아붙이고 만다.

제주도 사람들 이제야 정신 차리고 자정한다는 말 못 들었던가. 고창 인심이 이래서는 안 된다. 담아내는 그릇이 밥만 담는 것이 아니다. 새벽이면 정화수도 받쳐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을 만들지 않았던가. 구시포.

진동규<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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