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차 무시한 몹쓸 수행평가
개인차 무시한 몹쓸 수행평가
  • 한성천
  • 승인 2011.10.04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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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피아노 하면 질색하던 한 학생이 있었다. 대신 리코더를 곧장 연주한다. 초등학생의 실력치고는 수준이상이었다. 그러던 이 학생이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지낸 후부터는 리코더를 잡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강권에도 도망 다니던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늦은 밤까지 건반을 두드린다. 부모는 이웃의 피해(?)를 주지 않으려 제재를 가하지만 학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갑자기 돌변한 아이의 모습에 부모는 이유를 캐물었다.
 

어렵사리 입을 연 학생의 말에 부모는 놀랐다.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데 학교에선 리코더보다는 피아노 연주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 또 연주곡도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피아노를 공부해 온 학생만이 연주가 가능한 수준높은 곡만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가정형편상 피아노공부를 시키지 못한 학생이라면 수행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학교에서 수행평가 점수를 높게 받으려면 피아노학원에 다녀 수준높은 곡의 연주를 사전 체득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적어도 학생의 개인차를 적절하게 감안해 새로운 악기를 배우려는 학생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줘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수행평가 관행은 비교육적인 측면이 강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서 배워오라는 주문이 아닌가. 피아노를 안 치던 학생이 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해 도전한다면 극히 기초적인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 노력의 과정과 결과에 더욱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수학(修學)은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서고금의 교육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말이다.
 

교사의 교수법과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 등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취리히 공대에 응시했었다. 결과는 불합격. 프랑스어·화학·생물학에서 낙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리히공대 물리학 교수였던 하인리히 베버는 수학과 물리학에서 우수성을 발휘한 아인슈타인의 재능을 알아보고 청강생 자격을 줬다.
 

최근 국내에서도 꼴찌에게 박수를 보낸 아름다운 일이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되고 있다. 고교내신 9등급 중 8등급인 차석호군(춘천고)이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하지만, 연세대 교수들은 면접을 본 후 차군을 ‘반드시 뽑아야 할 천재’라고 극찬하며 합격생 명단에 올렸다. 이유인즉, 차군은 사물이 겹쳐보이는 안구질환을 앓아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신 하위는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한국의 앙리 파브르’를 꿈꿔온 차군은 곤충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의 열정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미 딱정벌레의 진화과정에 관한 논문도 썼다. 연세대 교수들이 일반적 평가기준으로 차군을 대했다면 차군은 ‘현실을 모르는 웃기는 아이(?)’로 치부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수한 스승은 우수한 제자를 만든다.
 

스승의 뛰어난 안목과 올바른 교육관으로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한 예는 많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사춘기 시절 학습 지진아였다. ‘진화론’을 제시한 다윈 역시 학창시절 의학자 집안의 수치일 정도로 열등생이었다. 재목을 알아보는 교사의 안목과 칭찬·격려는 열등생을 천재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킨다.
 

현행 수행평가 틀에 교사 스스로 함몰돼 학생을 평가한다면 천재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성향을 파악해 격려와 칭찬을 통해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재의 수행평가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내재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고사시키게 된다. 이는 전적으로 교사들의 역량에 좌우된다. 나아가 몹쓸 수행평가 방식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성천<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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