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선행학습을 조장하는 사회
69. 선행학습을 조장하는 사회
  • 문창룡
  • 승인 2011.10.04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마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다. 밤늦게 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시험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시험 문제로 출제되면 그나마 안심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는 하고 있으나 시험문제가 어떻게 출제될지 모른다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특히 수학시험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너무 어렵거나 상위학년에서 배울 내용이 미리 출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너무 어려운 학교시험이 결국 사교육을 부추기게 된다. 사교육 과열지역의 많은 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다.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시민단체가 사교육이 과열되는 지역의 중학교와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수학시험을 분석해서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중학교 77.7%가 고등학교 1, 2학년의 문제를 출제했다. 뿐만 아니라 절반 이상의 문제 난이도가 높았다. 심지어 한 학교에서는 25문제 중 24문제가 교과서 시범문항보다 어려웠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미리 시험을 대비하지 않으면 풀기 힘든 문제가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이들 학교들은 1학년 때부터 속진과정을 운영해 한학기만에 1년 과정을 모두 끝내버린다. 61.5%의 학교에서 ‘수학Ⅰ’ 시험문제에 ‘수학Ⅱ’나 ‘기하와 벡터’ 과목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과정에 편성된 과목보다 앞선 내용을 시험문제로 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계 고등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상당수의 학교가 특별반을 운영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교육과정을 앞지르는 교육을 하고 있다.

빠른 진도와 어려운 난이도의 시험문제를 내는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평가에서 뒤진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선행학습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사교육을 강요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교육과정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방침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가 각종 시험에서 낭패를 보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정부 책임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학교의 시험운영에도 각별한 지도 감독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은 정부가 주관하는 잘못된 대학입시가 학교교육을 망치게 하는 주범이라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매년 치르는 대학입시가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는 사람보다는 선행학습을 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출제되기 때문에 입시에 민감한 학교일수록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만큼 수학을 좋아하는 민족이 없다고 서양의 학자들은 말한다. 농부, 상인, 기술자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기초적인 수학을 그들의 생활 속에 적시에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어야 할 수학이 입시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선행학습이란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 난이도가 높은 수학은 수학과나 공대와 같이 높은 수준의 수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교육과정에는 생활 속의 수학이나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미있는 수학공부를 통해서 국민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을 개발시켜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수학문제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