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는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보스는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 이한교
  • 승인 2011.09.2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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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신병때의 일이다. 콘센트 막사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야간 점호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것이다. 소총 1정이 없어져 부대가 왈칵 뒤집혔다. 중대장은 즉시 찾지 못하면 모두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공포의 분위기였다. 점점 폭군이 되어가는 중대장은 우리를 흙탕물에 튀김을 하듯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등의 얼차려로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사실 군(軍에)서 총기 도난 사고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지휘관에겐 자칫 군 생활을 포기하거나 모든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대형 사고였다. 중대장은 평상심을 잃어버리고 흥분하고 있었다. 아니, 속으론 울먹이며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좀, 모두 눈을 감고 있을 테니 손만 살짝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갖은 협박과 읍소를 다하며 모든 카드를 다 사용했으나 허사였다.

끝내는 격앙된 목소리로,

“야, 이 ○○○들아! 너희들 지금 군화 속에서 발가락으로 춤을 추고 있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우리에게 중대장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아닙니다!”

칼로 바람을 가르듯이 대답한 우리는, 눈방울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까 봐 죽은 막대기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만 했다. 빗물이 옷 속으로 흘러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도 절대 권력자 앞에서 말뚝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군 생활은 무조건 복종만 용납되었던 시절이었다. 특히 부대 내에서 중대장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병의 군화 속에서 발가락으로 춤을 출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한 지도자의 통솔력이 문득 생각이 난다.

진정한 리더라면 군화 속의 발가락까지 멈추게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힘으로 해결하려는 보스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리더십의 부재였다. 뜻대로 안 되니 폭력을 남발하고, 집단으로 대응하고, 상대를 헤아리지 않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 했다. 요즈음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늘 큰소리치고 아니면 말고라는 무책임한 한탕주의 정치 형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얘기다.

오늘날 국민이 정치 집단을 혐오하게 된 것도 이런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국민이 더는 양보할 끝자락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더 깊은 물구덩이에 빠지기 전, 입만 살아 있는 지도자를 추방해야 할 것이다. 콩밭에 마음이 가 있는 비둘기(권력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지도자)를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특별히 이번 서울시 유권자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누가 더 진정한 리더인가 만져보고, 살펴보고 뒤집어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다 해체해 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서울 시장 선거가 신뢰를 회복하는 분수령이 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왜 오세훈 서울 시장이 물러났는가. 그는 누구였는가. 되짚어봐야 한다. 그 당시 시민은 왜 그를 선택했는지 복습을 해야 한다. 그는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을 만들겠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빈 깡통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확성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내가 진정한 리더다. 자신만이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 있게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이다. 시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듬는 시장이 되겠다. 시민사회 세력과 함께 서울을 살리고 새 시대를 열겠다.’라고 천편일률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들을 잘 봐 둬야 한다. 더는 속지 않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시장으로 당선되면 추종세력이 따르게 되고, 이에 우쭐대며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보스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 말만 잘하는 포장된 애국자와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속이려 드는 그들을 과감히 추려 내야 한다.

적어도 국민의 지도자라면 보스의 생각과 형태도 모방해서는 안 되며, 오르지 가난한 리더로 국민을 주인처럼 모시는 존경 받는 심부름꾼이 되어야 사회가 안정되고 평안해진다는 얘기다.

이한교<한국폴리텍대학 신기술연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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