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는 좌우 날개로 난다
보편적 복지는 좌우 날개로 난다
  • 최낙관
  • 승인 2011.09.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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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서울시 전역에선 무상급식 찬반 여부를 가리는 시민투표가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이 투입된 역사적인 찬반투표는 최종투표율 25.7%로 유효투표율에 미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서울시 교육청의 계획대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결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막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이번 투표결과는 무상급식과 관련한 타 지자체의 정책결정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보편적 무상복지에 무게를 실어주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전라북도는 지난 4일 무상급식과 함께 올 하반기부터 무상 접종, 무상 교육 등 이른바 3대 무상복지를 도정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청사진을 밝히면서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현실화를 위해 도민과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분주하게 의견수렴에 나서고 있다. 전라북도는 이러한 정책결정과 움직임이 전국 최초라는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 사회에 갈수록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복지정책은 저소득층 위주로 진행돼 온 게 사실”이라며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복지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전라북도가 보편적 복지라는 큰 틀을 가지고 3대 무상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의지표명은 찬성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시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촉발된 문제들, 예컨대 포퓰리즘 논쟁, 재원마련 문제 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숙고와 성찰만이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러한 소통과 합의를 전제로 적극적 복지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보편적 복지’라는 수레바퀴를 결코 앞으로 구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 최근 복지 논쟁을 주시해 볼 때,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무상급식의 실시 여부’라기보다 투표에서 승리만을 위한 좌와 우,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첨예화된 ‘편 가르기’에 있다고 본다. 무엇을 위한 복지논쟁인가 반문해 보기에 충분하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과 다름 인정 없이 서로에게 ‘적대감’만을 표출한다면, 보편주의 복지노선의 진정성은 국민에게 크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간 정치권의 행보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치권은 복지논쟁의 최일선에서 복지를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통합의 정치’보다 ‘분열의 정치’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열로 인한 이념적 위기 못지않게 전라북도가 직시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즉 재원마련과 관련된 문제이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전라북도이기에 좀 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상급식을 넘어 보편적 복지의 정착을 위해 향후 조세, 사회보험료 및 수익자부담금, 기부금, 후원금 등 사회복지정책의 재원조달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논의는 사회복지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재원확보 및 전달체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사회복지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

“보편주의 복지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말이 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서는 양 날개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스칸디나비안 복지국가들처럼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이룬 복지선발주자들은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오랜 기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한 계급갈등을 극복하고 좌파와 우파를 사회적 연대의 동반자로 묶는 소통과 합의의 과정을 겪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논쟁이 긍정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편견과 불신을 걷어내고 나아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아닌 연대와 합의를 도출해 내어야 한다. 복지는 인간다운 삶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임에 틀림없다. 이를 위해 국가와 정부는 스스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을 향한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도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복지는 이러한 반석 위에서 비로소 꽃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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