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전설 최동원 지다
한국야구 전설 최동원 지다
  • /노컷뉴스
  • 승인 2011.09.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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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30년만에 처음으로 600만 관중 시대를 활짝 연 프로야구가 또 한명의 큰 별을 잃었다. 프로 초창기인 198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투수 최동원 전 한화 코치가 끝내 지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5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올해로 서른살이 된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있어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던 부분은 바로 팬들을 매혹시키는 슈퍼스타의 존재 그리고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라이벌 관계였다. 고인이 프로야구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화려하기만 했다. 그는 불세출의 투수이자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선동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시속 150km 내외의 빠른 강속구와 커브가 주무기. 특히 최동원이 자랑했던 낙차 큰 커브는 선동열의 슬라이더와 더불어 역대 최고의 구질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타자를 업신여기는 듯한 특유의 자신감으로 마운드를 지배했던 에이스였다.

경남고와 연세대 시절동안 아마추어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스타였다. 특히 197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당시 전국대회 최다기록인 탈삼진 20개를 작성하며 팀 승리를 이끈 경기는 인구에 회자되는 명승부였다.

대학 졸업 후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영입 의사를 타진받기도 했으나 병역 문제 때문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는 못했다. 최동원은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한국의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동원은 1983년 출범 2년째를 맞이한 프로야구 무대에 마침내 뛰어들었다. 이미 20대 중반의 나이로 당시 기준에서는 전성기의 끝물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였다. 최동원의 전성기는 아마추어 시절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는 프로에서 보여준, 짧았지만 굵었던 활약상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데뷔 첫해에 9승16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한 최동원은 1984년 왜 자신이 한국 최고의 투수인가를 입증해냈다. 정규시즌 51경기에 등판해 27승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올렸다. 무엇보다 무려 14차례나 완투해 강한 어깨를 뽐냈다.

남다른 그의 어깨는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빛을 발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과 4차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 등판해 홀로 4승을 챙겨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명투수들이 프로야구를 거쳐갔고 또 주름잡고 있지만 단일 시즌동안 리그를 지배한 '포스'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1984년 최동원을 능가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1980년대 야구 팬들을 흥분시킨 스토리는 바로 고인과 선동열이 펼친 세차례 맞대결이었다. 역사적인 선발 대결의 결과는 1승 1무 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특히 마지막 승부가 펼쳐진 1987년 5월16일에는 연장 15회까지 완투 대결을 펼친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선동열은 무려 232개의 공을 던졌고 최동원도 209개의 공을 뿌려댔다. 야구 팬들이 꼽는 역대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다.

롯데의 에이스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던 최동원은 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을 주도했다가 소속팀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1988년 팀을 떠나야 했다. 롯데는 삼성의 에이스였던 김시진과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일종의 보복성 트레이드였던 셈이다.

이후 최동원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나이였고 트레이드 충격으로 인해 야구에 대한 열정도 예전만 못한 느낌이었다. 결국 최동원은 1990년을 끝으로 현역을 떠났다

최동원은 프로 8년동안 통산 248경기에 등판해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했다. 무려 80경기에서 완투했고 완봉만 15번을 기록할 정도로 철완이었고 또 당대의 지배자였다.

은퇴 후 정치와 방송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던 최동원은 2001년 한화 코치로 야구장에 복귀했다. 2006년부터 3년동안 한화 2군 감독을 맡았고 2009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현장에서 후배들을 도우며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지만 2007년에 찾아온 대장암이 결국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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