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국내 유일 전통목침 기능전승자-명장 김종연
(21)국내 유일 전통목침 기능전승자-명장 김종연
  • 김미진기자
  • 승인 2011.09.08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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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십년 넘게 칼과 나무속에서 살아온 김종연 명장이 그의 작업실이자 전시관인 ‘목우헌’에서 전통목침을 조각하고 있다.(김미진기자 mjy308@)

김종연(50) 명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도전자’라 부르고 싶다. 나무와 벗 되어 보낸 30여 년의 세월 동안, 그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일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그의 사전에는 없었으며, 배우고 또 배웠다. 전주한옥마을 1호 작가로, 나무와 만나는 집 ‘목우헌(木遇軒)’에서 매일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도전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

도전자의 두 손과 왼팔 곳곳에는 지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워낙 단단한 나무를 다루다 보니 대팻날이 빠져나와 왼손팔뚝을 파고들기도 하고, 왼손 검지는 이미 제살을 깎아 피부를 이식해 울퉁불퉁한 터라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왼손 새끼손가락의 감각은 무뎌질 대로 무뎌진 상태. 칼을 든 오른손은 늘 왼손에 안타까운 훈장을 남기기 일쑤다.

심지어 그 훈장은 첫째 아들의 눈썹에까지 남아있다. 5살 때 아버지의 작업실에 놀러온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조각칼을 가지고 폼을 잡아보다 눈썹을 베였던 아찔한 순간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모든 것들은 그를 지금의 ‘대한민국명장’으로 이끈 쓰라린 추억이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인정한 올해 최고의 숙련기술인인 ‘대한민국명장’ 타이틀을 거머쥔 김종연 명장. 전북출신으로 유일하게 목공예 분야에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뤄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그를 ‘전북문화기네스’에 초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2005년 국내 유일의 전통목침 부문 기능전승자로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기 때문. 그의 나이 마흔넷, 최연소로 대한민국 기능전승자로 인정받아 전통목침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김 명장과 나무로 만든 베개인 목침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골동품상에서 좌우대칭 호랑이 목침을 재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재현한 목침의 반응이 좋아 하나 만들어 놓으면 하나 팔리고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자연이나 기하무늬 등을 주로 사용했지만, 단순히 옛것을 재현하는데 머문다면 김 명장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민속박물관과 옛 문헌, 구전으로 전해지는 모든 기록들을 샅샅이 찾아내 전통과 현대를 조합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집중했다. 목침을 단순히 수면을 위한 도구가 아닌 옛 것의 멋스러움을 되살린 작품으로 승화시킨 산증인인 셈이다.

사실 김 명장의 손재주는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 댕댕이소쿠리와 싸리나무 채반 등을 아주 잘 만들었던 어머니. 그래서인지 김 명장도 어릴 적부터 만들고, 깎고 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장을 파다 손을 다친 형을 대신해 도장을 파주면서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 동네어른들, 친구들 도장이라면 모조리 파줘 온갖 학용품을 선물로 받아 직접 사서 쓴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얼마나 목조각이 재미있었는지 공부를 하면서 날을 샌 적은 없어도, 조각을 하면서 밤을 새기 일쑤였죠.”

반쯤 넋을 빠뜨린 채 조각에만 매달리는 아들의 모습이 밉기도 미웠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오른쪽 발목 근처를 크게 베어 큰 화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도 어머니의 꾸지람 걱정에 말도 못한 채 혼자서 러닝셔츠를 찢어 지혈을 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목각에 애정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 성모상 여인상, 판화 등을 조각해서 학교 행사 전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가 처음 정을 잡고 나무를 다듬기 시작한 것은 81년의 일. 현재 여주에 있는 목아박물관의 모태인 목아미사 개발부에 입사해 본격적인 목공예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한 달 수입은 고작 6만원. 기숙사비 4만원을 내고 나면 2만원 밖에 남지 않았지만, 목공예를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장성한 나이에 생활비가 넉넉하지 못해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몰라요. 나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부드러움과 소박함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배고픔도 잊었던 것 같아요.”

그가 전문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은 86년께다. 공병대를 나와 중장비면허증을 4개나 보유했던 그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건설회사에서 4개월여간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었지만, 도저히 목공예를 향한 사랑과 집착을 놓을 수 없었다고.

결국, 전주에 내려와 개인 공방을 열게 되고 뭐든 잡히는 대로 일을 했다. 보증금 50만원을 겨우 마련해 구한 한 평 반짜리 작업실이 그에게는 소중했다. 이전에는 불상과 동물 조각만 해왔는데,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에서는 뭐든 다 할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모방도 많이 하고, 만들기도 많이 만들었다. 절대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었다. 각종 공모전에 출품해 50여 차례 수상도 했고, 이름을 알렸다.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실기도 중요하지만 이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그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고자 대학도 늦깎이로 입학해 공부했다. 가장으로서 4년 동안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 간다는 것에 참 행복했다. 배움의 열정은 식지 않아 그 뒤로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치면서, 전통공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옻칠까지 마스터하기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에 또 한 번의 도전을 했던 그다. 전각 분야에서도 돋보이는 솜씨를 인정받은 것. 정부가 공모한 ‘대한민국 5대 국새대전’에서 80여명의 쟁쟁한 실력자들 사이에서 2위인 우수작의 영예를 차지했지만, 1등만 국새로 선정되는 규정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쉽지만 배움의 기회로 생각한다”는 그의 답변에서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늘 긍정적인 도전자의 행복한 다이어리에는 갖가지 스케줄이 꽉 차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대중과 목공예를 공유하는 일이 그에게 남은 가장 큰 과제다. 예를 들면 목공예체험, 재능 나눔, 학생진로와 같은 것들에 대한 고민들. (사)국토순례문화연구회와 완주군이 함께 추진 중인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교육 또한 활성화하고 싶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명장은 “과거에는 목공예가 돈도 안 되고 너무 힘든 일이다 보니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피하곤 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달라졌다”면서 “공예작업의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좋아진 만큼 목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적극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전통과 현대공예를 아우르는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들을 하고 싶다는 게 김 명장의 포부. 외길 30년 만에 드디어 크나 큰 영광을 안은 그에게 그야말로 소박한 꿈이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작품들은 이미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브랜드적 가치를 뽐내고 있으니 말이다.

◆ 김종연 프로필

<초대전 및 단체전>
1996∼ 전라북도 전승전(전북예술회관)

1998∼ 2002 한국미술협회 전주지부전(전북예술회관)

1999∼ 전북공예가 회원전(전북예술회관)

2002 월드컵 개최 성공기원전(전북예술회관)

2003 한·몽 미술교류전(전북학생회관 전시실)

2004 전북도립미술관 개관초대전

2004∼2008 천잠조형전(전주)

2007 스페인 마드리드 문화교류전, 대한민국 기능전승자전, AMANO GALLERY(OSAKA), 한국공예작가 100인초대전

2008 전북미술대전 대상작가초대전(한국소리문화의전당)

2009 한국공예 100인 초대전(코엑스)

<수상경력>
1991 제9회 한국예술대제전 대상(세종문화회관)

1992 제15회 전라북도 공예대전 대상(전북예술회관)

1997 제11회 전국춘향미술대전 종합대상(춘향예술회관)

2001 제33회 전라북도 미술대전 종합대상

<심사 및 운영위원>
우석대 산업디자인학과 및 전주대 문화산업대학원 졸업

전라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운영위원·심사위원 역임

온고을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공예대전 운영위원·심사위원 역임

전라북도 기능경기대회 심사 및 심사장 역임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강사역임(6년)

현) 전라북도 전승공예연구회회장, 한국공예문화협회,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작가회, 전북공예가회, 천잠조형회에서 활동

김미진기자 mjy308@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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