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리해고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김형준
  • 승인 2011.09.0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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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가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리며 사회적인 문제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성향이나 ‘무엇이 진실인지’의 유무를 떠나 현 한국사회에서는 정리해고는 사회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의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2년 전 앞서 대량 정리해고된 쌍용자동차의 실직 노동자의 고통과 치유과정을 취재한 다큐를 방송한 일이 있었다. 2년 사이 해고 노동자중 14명이 사망하였는데 그중 8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6명은 막노동의 일을 하다가 과로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방송이후에 며칠 사이 또 다른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벌써 15번째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주장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닌 것 같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450여명을 대상으로 한 보고를 보면 약 71%가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을 보이고 42.8%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으며 52%가 극심한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는 성적 희롱이나 폭력이 많은 서비스 노동자(6.7%)나 인명 사고를 자주 경험하는 열차 기관사(6.5%)보다 6~7배 높은 수치이다. 방송에서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8주간 집단심리치료를 해온 정신과의사 정혜신박사의 말을 인용하면 해고, 파업과 농성, 그리고 강제 진압의 과정에서 그들은 ‘전쟁 같은 상황’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전쟁’을 경험했고 죽음의 공포와 세상과 단절된 고립감, 그리고 스스로 이겨낼 수 없다는 무력감 등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받게 되었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져온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성범죄 피해자나 대구 지하철 화재 같은 대형 참사의 생존자, 전방GP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와 같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성 사건 후 나타날 수 있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이혼 같은 스트레스도 심리적인 고통을 주지만 이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고 극복해 낼 수 있으나 자신이 도저히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력한 외상성 사건은 사람의 심리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트라우마)를 주고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해고 노동자의 경우 이 사건이후 집안에 라면과 생수를 마구 사서 쌓아놓고 문을 잠그고 밖에 나오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데 이것은 단전, 단수 등 철저히 고립된 파업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이 그 상황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공포감에 사로잡혀 홀로 생존의 투쟁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가 예후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2년이 지난 지금도 1년 뒤 복직을 약속받은 무급 휴직자 대부분과 함께 해고 노동자들은 복직되지 못하고 도시의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국제경쟁력 등등 이런 어려운 말들이 시대의 절대가치인 세상을 살아가는 한 어쩌면 파산,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시장의 질서일지 모르겠다. 어려워진 회사를 그나마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는 선택이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현실이지만 희생되는 약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가 필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퇴직금, 경제적 지원 이런 현실적인 것이 어렵다면 ‘공정한 법집행’, ‘법질서 확립’이라는 말보다 다른 어떤 지원책이라고 앞장서서 도우려고 하고 설득의 과정을 가지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법집행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의 심리적 상처에 대한 사후 대책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서로 피할 수없는 선택으로 극한의 대립을 하였고 상처받았다면 그 상처에 대한 치료라도 회사든, 정부든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치료는 사회적, 정부적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 대부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이 되는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고 전염병 예방과 같이 이것에 대한 대책을 공공보건,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역사회에 ‘재난외상치유센터’를 만들어 지역 내의 대규모 재난사건이나 외상성 사건에 대한 예방 및 적극적인 치료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리해고한 회사가 혹은 정부가 해고자를 위한 최소한 기관을 만들고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거나 몸과 마음의 치료를 지원하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대립과 갈등의 소식을 대신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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