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는 커녕 가족들 모이는 것은 꿈도 못 꿔…”
“차례는 커녕 가족들 모이는 것은 꿈도 못 꿔…”
  • 전재석기자
  • 승인 2011.09.04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상님들 뵐 면목도 없고 마땅한 장소도 없어서 올 추석에는 차례도 못 지낼 것 같아요.”

지난달 9일 하루 동안 4백㎜가 넘는 물폭탄이 덮쳐 온 마을이 폐허가 됐던 정읍시 산외면 한우마을.

20여일만인 2일 다시 찾은 산외면 한우마을은 겉보기에는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은 듯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저수지 뚝이 붕괴되면서 가옥이 휩쓸려 붕괴된 산외면 평사리 노운 마을 윤봉길(63)· 최강순(61)씨 부부.

명절을 앞두고 추석 준비에 나설때지만 노 부부는 텅빈 마당 한켠에 우두커니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안식처였던 가옥은 온데간데 없고 빈집터에는 1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돌무더기와 모래만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수해로 집을 잃고 벌써 20여일째 임시 거처인 컨테이너 박스안에서 노부부는 새우잠을 잔다.

더구나 윤씨가 일용직 일을 근근히 생계를 이어오던 터라 집을 다시 복구할 일은 엄두도 못낼 처지라 불편한 컨테이너 삶은 기약조차 없다.

수해의 순간을 떠올릴때마다 윤씨 부부는 지금도 악몽을 꾸는 듯하다.

“목숨 건진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야. 저수지 뚝이 터져 순식간에 마을에 물이 잡겼지. 급한김에 창문틀에 올라 목까지 차오른 물을 겨울 피할 수 있었지. 그때 차라리 죽었더라면 이고생 안할 텐테….”

윤씨는 끝내 굵은 눈물을 떨궜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 2마리도 물에 떠내려가 죽었다. 마당에 세워놨던 트럭도 물에 잠겨 결국 폐차 처분했다.

하루 밤사이에 집을 잃고 나니 편안히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아내 최씨는 “올 추석 제사도 지내야 하는데 아들, 딸들 앉아서 쉴 곳조차도 없다”며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집이라도 있어야 뭐라도 해서라도 살아 갈 텐데 정말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폭우로 집이 전파된 피해자들에게 지원되는 복구비는 고작 900만 원.

노부부가 집을 새로 짓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1천800만 원의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집 한 채를 새로 짓으려면 최소 4천만 원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노부부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자식들도 어렵게 시집 장가 보내 지들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부모가 집잃었다고 도와줄수 있겠어요.”

윤씨는 “집이 부서져 주택형 조립식 건물 설치를 건의도 해봤지만 1년에 250만 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정읍시의 말에 더욱 화가 난다”면서 “수해민들을 상대로 장사라도 해먹겠다는 것이냐”고 가슴을 두드렸다.

윤씨는 “수해가 난 뒤 국무총리가 다녀가고 정읍시장이 왔다가면 뭐하느냐 .실제 피해주민들한테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의지한 채 올 추석 명절을 보내야 하는 윤씨 부부의 가슴은 숯검뎅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전재석기자 jjs1952@domi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