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민투표의 교훈
서울시 주민투표의 교훈
  • 김우영
  • 승인 2011.08.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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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참여나 거부냐를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뜨거운 경쟁을 벌였던, 지난 24일 실시한, 전면적 무상급식과 단계적 무상급식을 선택하는, 서울시 주민투표가 25.7%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투표함의 개봉이 무산되고, 투표에 참여했던 215만 9095명의 서울 시민의 의견은 폐기됐다. 182억원을 들인 주민투표가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도 못하고, 사장되고 만 것이다.

그 이유는 주민투표법에 있다. 현행 주민투표법은 유권자의 5~20%가 청구하면 투표를 개시할 수 있고(발의요건), 유권자의 3/1이상이 투표(개표요건)한 후, 투표인의 과반수 득표로 투표안을 확정(확정요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주민 투표는 개표요건인 33.1%의 투표율을 넘기지 못하여, 결국 투표함을 열지 못하였다.

182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인, 그리고 25.7%의 유권자가 참가한 주민투표가 아무런 결론을 확정짓지 못하고, 무효화된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한 결과는 아닌 것 같다. 투표의 참여와 거부를 독려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서, 서울시민이 무상급식을 선택했다거나, 단계적 무상급식을 선택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아전인수적인 해석에 가깝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주민투표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이 우선적이 과제일 것 같다. 문제점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이러한 나쁜 결과가 예상되는 주민투표를 강행하게 된 요인이다. 둘째는 단순한 정책 투표가 정략적인 투표 찬반 운동으로 변질되고, 민의 확인이 왜곡될 수 있는 제도적 요인이다.

첫째로, 우리는 우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적 급식을 주장하는 서울시 의회의 조례안에 반대하고, 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주민투표라는 무리수를 강행할 필요가 과연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자치단체의 장은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주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다는 논리는 타당한 것 같지만 모순적이다. 서울시의 의원들 역시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직접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 대의정치 체제이다. 자치단체의 장이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서 주민투표의 방법을, 사안마다 선택한다면, 대의 기관인 의회의 의미가 없어진다. 자치단체의 장은 의회의 의견에 대해서 존중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좋은 지도자는 대결을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설득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둘째로, 정책에 대한 주민의 찬반과 선택을 묻는 주민 투표가, 찬반과 선택이 투표율로 결정되는 결과를 양산할 수 있는 현행의 주민투표법이 과연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보궐선거의 투표율도 대도시의 경우 20% 내외에서 머물고 있다. 33.3%의 투표율은 한 정파에서 투표거부 운동을 벌인다면, 정말 넘기 어려운 선이 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율 25%를 넘을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물론 대표성을 위해서는 33.3%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투표율이 낮아지는 현재의 추세에 있다. 각 정파는, 이 때문에,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를 활성화하여, 자기 진영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투표에 유리한 진영에서는 투표율을 높이는 것을, 투표에 불리한 진영에서는 투표거부를 통해서 33.3%의 투표율을 저지하는 것을, 보다 유리한 선택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에 대한 투표는 선택의 확정도 중요하지만, 찬반과 선택의 논의 과정을 통해서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책에 대한 찬반과 선택의 논의를 활성화하고, 한편으로 투표율을 높여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발의요건(5%)을 상향하고, 개표요건(33.3%)을 25% 정도로 낮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개표요건이 낮아지면, 각 정파는 투표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투표를 독려하여 투표율을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표성의 요건을 갖추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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