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自殺)은 죄악(罪惡)이다
자살(自殺)은 죄악(罪惡)이다
  • 신대철
  • 승인 2011.08.1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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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기목숨을 끊는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다. 특히 청소년 자살자 수가 해미다 급증하고 있어 예방대책이 시급하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 도내에서는 하루 평균 1.8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1년이면 600명 정도이다. 전국평균으로 보면 4번째에 해당하고 자살의 주된 원인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많다고 한다. 못사는 동네일수록 아픈 환자도 많고 극단적인 자살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은 더 가슴 아픈 현실이다. 국민의 행복한 삶 질 향상과 행복추구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서 예방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난 주 공직비리로 조사를 받던 공직자가 한강에 몸을 던진 자살행위에 이어 도내 한 지역에서는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20대 남녀가 승용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수면제를 복용,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자상행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용어자체부터가 끔직한 자살은 자기살인, 자기학살, 자기파괴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이유 또한 여러 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명예회복의 수단으로, 또 어떤 이는 사랑과 배신 때문에 그리고 사업실패나 질병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자살은 어떤 한계상황에 다다른 개인이 그 한계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최후의 수단으로 삼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현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보다는 불안 심리나 인내심 부족, 그리고 또 다른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일시적 감정에 의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생명,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제2, 제3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살육을 하는 것은 인도적 측면이나 종교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犯罪行爲)임에 틀림없다.

물론 자살을 긍정했던 시대가 있었다. 고대(古代) 시디아인들은 너무 늙어서 그들 유목민 생활방식에 따라가지 못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최대의 영예로 생각했다. 말하자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기 젊은 부족들이 자기들을 죽이는 죄와 수고를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크리스챤 유럽에서 자살은 크게 부정하였다. 특히 영국에 있어서는 중죄인(重罪人)으로 취급하여 처벌하였다. 귀족신분자가 자살을 하면 평민으로 신분을 격하시키고 그가 소유한 삼림을 모두 베어 냈으며 성은 파괴하였다. 재산은 국가의 재산으로 환수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자의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 허들에 태우고서 끌고 다니다가 불태워 공공쓰레기장에 던져 버렸다. 문명 도시 아테네에서는 자살자의 시체는 다른 무덤들과 격리되어 아테네시(市) 외곽에 파묻었다. 이토록 자살자는 철저히 범죄인(犯罪人)내지는 흡혈귀로 보아 격리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생명은 단 하나뿐이다. 누구도 그 생명에 대하여 좌지우지 할 수 없으며 비록 자기생명이라 할지라도 결코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라. 그 목적이 명예회복이건 진실규명이건 사업실패이건 목숨을 내던져 무슨 소용이 있는가?

스스로 자살을 할 만큼 용기를 가졌다면 당신은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단 하나 뿐인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스스로 떠난 당신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족과 이웃과 지인들에게 악몽을 남기고 절망과 포기라는 전염병으로 옮길 수 있는 가장 나쁜 선례임을 왜 모르는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한 자살충동, 그러나 그 한순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고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한번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연한 사고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것이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바로 당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신대철 <전북청소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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