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혁신과 국가, 오브체니!
학교혁신과 국가, 오브체니!
  • 김정훈
  • 승인 2011.08.0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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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학부모’가 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공익광고를 통해 ‘내 자식 이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학부모’와 교육의 본질을 바라보는 ‘부모’를 분리해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물론 공익광고는 근엄하게 한국의 ‘학부모’에게 말한다. ‘부모’가 되라고! 그야말로 맞는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좀 수상쩍다. 자신을 중산층으로 믿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삶의 한 순간 순간이 버거운 저소득층 학부모까지 아이들을 무더운 여름방학 야간자율학습은 물론 갖가지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주범으로 여기는 것이 온당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한동안 아니 지금도 여전히 교사와 학교는 개혁의 대상이다. S대 몇 명, 수도권 대학 진학률 등으로 고등학교를 가르고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초중학교들에 순위를 매긴다. 이 대열에는 지자체도 한몫한다. 우리 아이의 경쟁력, 우리 학교의 경쟁력, 우리 지역교육의 경쟁력,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 ‘우리’라는 단위가 커질수록 ‘우리’에는 아이들이 빠지고 학부모들이 실종된다는 사실은 물론 교사도 학교도 교육도 안중에 없는 시장화만이 기다린다.

이러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늘 숨어서 교사(학교)나 학부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실체가 바로 국가이다. 이중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 교육을 자본의 거래대상으로 만들어온 국가의 책임과 정책 전환을 요구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회양극화에 의한 계층의 유리 천장이 교육양극화에 의한 계급의 유리 천장으로 고착되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환상만으로 굴러가는 새로운 신분사회는 끔찍하다. 청소년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 대부분이 잘못된 교육체제에 의한 타살 가능성으로 의심되는 이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서 ‘학교혁신’을 주장한다. 누군가를 개혁 대상화하지 않는 변화를 이루자는 말이다. 그 변화의 출발은 모두가 ‘경쟁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더디 가도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여름 장마와 태풍과 불볕 더위를 뚫고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도보대장정’이 7월 말에 시작하여 8월 12일에 서울 입성으로 끝을 맺을 예정인데 이 도보대장정의 화두도 단연 ‘경쟁중독에서 벗어나기’이다. 학생-학부모-교사-지역사회가 공동체적 협력으로 학력과 스펙에서 인간발달의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오브체니’라는 러시아 말이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교수(가르침)와 학습(배움)이 분리되지 않는 교수-학습이라고 한다. 교육은 결코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재단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진실이 이 말 속에 있다. 교수와 학습이 교사와 학생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이지 않는 행위라는 것은 우리의 전통 속에도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 그것이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이며 성과 위주의 방식은 결코 교육적이지 않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호소통적이며 인간 발달에 목표를 두고 ‘학교혁신’이 진행되어야 한다.

학교혁신이 일부 단위 학교들의 몸부림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브체니’라는 말의 함의처럼 학교와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할 일이다. 국가가 할 일은 제발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거대학교 해소하고 교사 법정정원 지키는 일이다.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공동학위제 등 입시경쟁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교사와 학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니 국가도 제발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가가 교육시장판을 걷어치우고 학교혁신으로 교사와 학생이 ‘오브체니’할 수 있는 협력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mb교과부는 아직 그럴 조짐이 전혀 없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복지 이전에 삶이다. 그렇다면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부모와 학부모는 다르지 않다!

< 김정훈 전교조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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