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웅씨 “난징에 잘 정착 보람차게 살고 있습니다”
윤태웅씨 “난징에 잘 정착 보람차게 살고 있습니다”
  • (장훼이칭·張會淸)
  • 승인 2011.07.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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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예정일대로라면 윤태웅 씨의 아이는 8월 8일에 출생하게 된다. "올해 3월 한국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윤태웅 씨 부부는 아이를 중국에서 낳기로 결정했다. 윤태웅 씨가 난징에 온 지는 벌써 16년이 흘러 지났다. 그 동안 아파트와 자동차도 장만했고 이제 애까지 탄생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지게 된 셈이다.

1995년 7월 2일, 윤태웅 씨는 이 날을 생생하게 잘 기억하고 있다. "기억에 가장 많이 남지요. 그때는 중국이 뭐든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휴지며 생필품을 가득 챙겨 서울에서 상하이로 날아와 다시 기차 타고 난징으로 왔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 그는 난징중의약대학에 도착했는데, 그 이튿날 학교는 바로 방학을 하였다. 그는 학교에 남아 중국 학생한테서 두 달 동안 중국어를 배웠다. 개학해서 1년 동안 중국어를 더 배우고 HSK 6급에 합격하여 순조롭게 중의학을 전공할 수 있게 되었다. 1년 만에 HSK 6급에 합격하게 된 것은 매일 중국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다른 한국 유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중의학 전공 학력을 인정해 주지 않아 아쉽지만 5년 간의 공부는 무용지물로 되었다. 오직 군복무를 하던 무렵에 윤태웅 씨는 가끔 친구들에게 침을 놓아주거나 처방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일본에 가서 몇 달 동안 마사지를 배웠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난징을 찾아 한 기업이 개설한 병원에서 계속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갖고 온 생활비는 곧 바닥이 나고 생계를 위해 윤태웅 씨는 유학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학생들을 난징사범대학에 소개하여 중국어를 배우게 하고, 한국 의사들이 난징중의약대학에서 단기연수를 하도록 주선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을 수 있기에 유학센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마침 중국 친구가 한식집에 투자하여 경영을 맡게 되었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안훼이성(安徽省) 출신으로 같은 식당에서 회계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윤태웅 씨가 자신의 월영주막을 오픈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요즘 식당을 경영하는 한편 그는 한국걸익(傑益)교육 사업부장도 맡고 있다. 중개소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인데 한국 정부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직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하여 설립한 것으로 무료로 중국 연수를 시켜준다고 한다. 중국어뿐만 아니라 난징의 한국회사들을 초청하여 강의하고 있다. 윤태웅 씨도 가끔 난징의 민속과 인정세태에 관한 강의를 한다. 6월 달부터 이미 12명의 학생이 이곳에서 연수 중에 있다. 9월에는 남서울대학교 국제무역전공의 50명 학생이 이곳에서 연수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그는 교육 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 5시 30분부터 새벽 한 시까지는 식당에서 바삐 보낸다. 하지만 이미 습관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하루 5시간을 자야지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에 5시간을 자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16년 동안 난징에서 공부하고 유학센터를 만들고 또 사업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난징이 자신에게 준 기회가 더 많다고 하면서 그는 앞으로도 난징에서 발전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장훼이칭·張會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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