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다섯손가락 채운 반지의 제왕
KCC, 다섯손가락 채운 반지의 제왕
  • 신중식
  • 승인 2011.07.11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지가 많아 행복한 사나이가 있다. 전주 KCC의 맏형이자 프로농구 최고참인 추승균(37). 1997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코트를 누빈지도 벌써 14년째. 무려 8번이나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5번 정상을 정복했다. 우승할 때마다 구단이 제작하는 기념 반지도 모으다 보니 어느새 다섯 개가 됐다. 우승 반지로 가득 찬 다섯 손가락. 그가 걸어온 길이자 곧 프로농구의 역사다.



"허재 감독님 정말 너무 잘했죠"

현대와 기아가 맞붙은 1997-1998 챔피언결정전은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힌다. 추승균도 그 무대에 있었다. 프로농구에 갓 입문한 신인이었지만 그에게 '농구대통령'을 막으라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7차전 혈투 끝에 현대가 4승3패로 승리했고 추승균은 생애 첫 우승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MVP는 준우승팀의 허재에게 돌아갔다. 시리즈 평균 기록은 23.0점, 6.4어시스트, 4.3리바운드. 부상 투혼을 이겨내고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다.

추승균은 당시를 떠올리며 "현대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아는 용병 한명이 다쳐서 우리가 쉽게 이길 줄 알았다. 그런데 허재 감독님이 너무 잘해서 7차전까지 갔다. 1,2차전 주고 3,4차전 잡고, 다시 5차전 주고 6차전 잡고, 7차전 가서 어렵게 이겼다"고 말했다.

연일 맹활약을 펼친 허재 때문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수비를 맡았는데…"라며 말문을 연 추승균은 "허재 감독님이 정말 너무 잘했다. 스텝, 슛, 돌파, 드리블이 좋은데다 보는 시야도 워낙 넓었다. 골고루 다 잘했다. 게다가 결승이라고 이 악물고 뛰더라. 부담이 많았다. 연구하고 나갔는데 실패했고 게다가 팀에서 막내급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안좋았다"고 말했다.

소득도 있었다. 추승균은 "선배들이 마음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덕분에 나도 농구가 늘었다. 그때는 내가 수비를 잘하는 줄도 몰랐다. 열심히 따라다니기만 했고 요령을 몰랐다. 이 때를 계기로 요령이 붙으면서 수비가 더 좋아졌다"며 웃었다.



"그때 그 3점슛이 기억납니다"

현대는 1999년에도 기아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렀다. 1년 전 현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허재가 나래로 이적한 뒤였다. 하지만 기아의 전력은 변함없이 강했다.

"사실 1998년보다 이 때가 더 어려울 줄 알았다. 클리프 리드와 윌리포드, 두 용병이 워낙 좋았다. (강)동희 형과 (김)영만이 형도 건재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현대의 전력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일방적인 승부 끝에 4승1패로 챔피언결정전을 마무리지었고 추승균은 두번째 우승반지를 모았다.

이후 한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SK와 삼성이 각각 한번씩 패권을 차지했고 김승현이 이끄는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 김주성이 가세한 TG삼보(현 동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가 연고지를 대전에서 전주로 옮겼고 KCC로 새롭게 태어난 시기였다. 절치부심 끝에 KCC는 2004년 결승 무대에 올랐다. 1999년 이후 5년만의 첫 우승 도전, 그 상대는 TG삼보였다.

KCC가 왕조의 이미지였다면 TG삼보는 떠오르는 강호였다. 1년 전 오리온스 돌풍을 잠재우고 정규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강호였다. 하지만 KCC는 큰 무대에 강했다. 접전 끝에 4승3패로 정상에 등극했다. KCC가 변칙적인 트레이드로 R.F 바셋을 영입해 말도 많았지만 어쨌든 추승균의 손가락에는 세번째 우승반지가 끼워졌다.

"TG삼보가 정규리그 우승을 했지만 우리가 4승2패로 맞대결에서 앞서 모든 선수들이 자신감이 있었다. 2승2패에서 5차전이 분수령이라 생각했는데, 힘들게 이겼다. 계속 접전을 벌이다 막판에 벌어졌는데 그때 45도에서 결정적인 3점슛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추승균은 73-73 동점이었던 4쿼터 초반 3점슛을 넣었고 KCC는 이후 단 한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추승균은 7점차로 앞선 종료 1분21초 전, 또 한번 3점슛을 림에 꽂아 승부를 결정지었다.



"가장 힘들었던 우승? 2009년이죠"

2004년은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삼총사가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올린 마지막 해였다. 이후 KCC는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이상민은 삼성으로 떠났고 조성원은 코트를 떠났다. 사령탑은 '신산' 신선우에서 허재로 바뀌었다. 추승균은 어느덧 최고참 대열에 올라섰고 팀은 하승진, 강병현, 신명호 등 젊은 선수들로 가득 찼다.

KCC는 2008-2009시즌 다시 정상에 올랐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로 불렸던 추승균이 어느 때보다 소리가 컸던 시즌이다. KCC는 '롤러코스터' 시즌을 보냈지만 추승균은 늘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정규리그 54경기는 물론이고 6강 플레이오프 5경기, 4강 5경기에 이어 이상민이 버티는 삼성과의 결승 7경기까지 모두 소화했다. 한 시즌 출전 경기수가 무려 71회였다.

"가장 힘들었던 우승이라면 2004년? 아니, 2009년이 제일 힘들었다. 71경기를 한번도 안쉬고 다 뛰었으니까. 나이가 들다보니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힘들었던만큼 결과로 돌아와 기뻤다"

추승균은 7경기에서 평균 14.6점, 4.0어시스트로 활약했다. 4차전 연장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렸고 마지막 7차전에서는 24점을 몰아넣어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 결과, 챔피언결정전 MVP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과거와는 느낌이 다른 우승이었다. 선배들을 보조하는 위치가 아닌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서 달성한 첫 우승. 추승균은 "운동을 하다보면 올해 해볼만 하겠구나 느낌이 올 때가 있다. 2009년이 그랬다. 어느 날 후배들이 '우리 플레이오프 가면 우승하겠는데요'라고 말하더라. 속으로 애들이 자신감이 많이 붙었구나 싶었다. 뿌듯했다"고 말했다.

물론, 겉으로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후배들의 말에 동의해준 적은 없다. 네가 잘해야 우승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넘겼다. 속으로는 나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벤치에서 지켜본 다섯번째 우승

추승균은 2010-2011시즌 동부와의 챔피언결정전 도중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몸 관리가 철저한 추승균이 근육에 무리가 와 못뛴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6강과 4강 무대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탓에 몸에 무리가 왔다. 전자랜드와의 4강 3차전 때 이상 징후를 느꼈다. 하지만 쉴 여유가 없었고 결국 가장 큰 무대에서 벤치를 지키는 신세가 됐다.

추승균은 KCC가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데 있어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결승에서는 하승진, 강병현 등 후배들이 선배의 빈 자리를 잘 메웠다. 동부를 4승2패로 누르고 선배에게 다섯번째 우승 반지를 선물했다.

"부상 때문에 아쉬웠고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후배들이 스스로 이겨냈다는 점은 우리에게 큰 소득이었다. 나도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아쉽지만 내게도 큰 소득이었다"

추승균은 다가오는 2011-2012시즌 또 한번 정상 도전에 나선다. 이미 다섯 손가락이 우승 반지로 가득 찼지만 반대쪽 손가락에도 반지를 끼겠다는 각오다. "올해도 기회인 것 같다. 2009년과 2011년 때는 정규리그가 정말 힘들었다. 순탄치 않았다. 이번에는 쉽게 갔으면 좋겠는데"라며 웃었다.

추승균은 올해 구단과 FA 계약을 했다. 기간은 1년, 연봉은 2억원. 지난 해보다 무려 1억5,000만원이 삭감된 액수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 삭감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자발적으로 깎았다. 옛날부터 많이 받아왔다는 점도 생각했고 샐러리캡이 꽉 찬 구단의 입장도 생각했다. 그 몫이 후배들에게 돌아갔으니 만족한다. 와이프에게도 연봉 얘기는 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추승균의 말이다. 부인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도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계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추승균의 희생이 더해지면서 KCC의 연봉 협상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한 팀 사기는 크게 올랐다. 여섯번째 반지 사냥을 위한 원정의 시작은 순탄하기만 하다. 노컷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