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표>홍준표와 그 이후
<태기표>홍준표와 그 이후
  • 이병주
  • 승인 2011.07.11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 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의원을 대표로 유승민,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고 막을 내렸다.

4. 24 재보선의 참패에 책임을 지고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기존의 지도부가 총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의 과도기를 거친 후 이제 집권여당의 지도부가 결성됨으로서 국민이 갖고 있던 불안을 떨쳐버리고 한나라당의 중심이 잡힘으로서 정치적 안정과 국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사실 지역정가나 또는 지역 언론계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필자로서는 몹시 안타깝게 느꼈고 전당대회 과정에 대해 당원의 하나로서 집중과 조명을 받을 기회를 가져보려고 시도해봤으나 여의치 않아 전당대회에 대한 결과보고로 대신 하려고 한다.

7월 4일 전당대회 이전에 7월 2일 전국위원회가 열려야 되는 사태가 빚어졌는데 그것은 그 직전 11차 전국위원회에 대한 법원의 무효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은 투표에 영향을 끼치는 30% 여론조사의 반영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대의원과 지방에서 참여하는 선거인단 그리고 국민의 여론조사를 통해 최고위원 선출이 가능하게 됨으로서 22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전당대회가 되고 말았다.

특히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여론조사는 당원이나 대의원보다 18배의 가치를 갖게 되면서 표의 등가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함으로서 심각한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민의의 수렴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존 당원의 정당한 권리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는 역차별에 대해 당원들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항변이었다.

그래서 몹시 소란스러웠지만 또 전국위원회에 참여하는 대의원의 권리가 가장 많이 박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당이 망신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압도적인 다수가 당원의 권리가 훼손당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지도부 구성은 50대 2명에 40대 3명이 선출되었다. 58세인 홍준표 대표가 맏형이라면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엄청나게 젊어졌다.

나이든 사람은 정치를 못하는 것인지 또는 젊은 사람이 정치를 더 잘한다는 건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되겠지만 60년대에 신민당 유진산 당수가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의 40대 기수론에 대해 구상유취라는 일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도 없는 것으로 봐서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된다.

홍준표는 별명이 많은 사람이다.

SBS 인기드라마 모래시계가 히트하면서 얻어진 ‘모래시계 검사’, 거침없는 비판으로 ‘홍 반장’, 또는 ‘버럭 준표’, 정치 입문후 정열적이고 곧은 정치를 하겠다며 15년째 빨간 넥타이만 매고 다녀서 ‘빨간 마후라’ 등 가장 많은 별명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별명이 많다는 것은 정치적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고 민중의 인기가 많다는 뜻도 된다.

대신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이다.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하고 은행 영업이익의 10% 서민대출, 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법안 등 홍준표가 한나라당 소속이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정도의 정통 보수 측에서는 불안하게 느끼는 파격적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다.

그의 생각과 사고가 보수 본류 쪽에서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 정책을 입안하거나 주장할 때 과격하게 밀어 붙이는 것이 더욱 시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뿐더러 옳다고 생각되면 조용하게 주장할 줄 모른다.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밀어 붙이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일본어식 표현이지만 그는 도꼬다이다.

따라 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그래서 그는 조직도, 계파도 없지만 밀어붙인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돈을 가진 사람에게도 그래서 그는 조직의 안정을 깨뜨리는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보면 이해가 간다.

그의 출신 성분은 그의 책제목처럼 변방중의 변방이다.

낙동강별 하천부지에 집을 짓고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기 일쑤고 양식 없어 꼬박 3일동안 굶은 적도 있다.

일당 팔백원짜리 근로자로 근무하는 아버지가 있었고 사채를 쓰다가 곤욕을 치르는 어머니가 있었다면 그런 소년시절의 홍준표가 이제 중심부로 나와서 친서민 또는 빈민적 정책과 사고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

그는 자유와 평등 등 민주주의의 제 가치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가난했던 과거와 과거에 대한 추상이 못가진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뜨거운 배려와 관심으로 나타나진 것으로 보인다.

헝그리한 소년시절, 그래서 앵그리한 아웃사이더로서 그는 청년시절 검사생활을 보냈다. 어느 네티즌의 적절한 평가처럼 세계를 해석하고 상대하는 방식은 검찰에서 완성됐다. 검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고체계이고 존재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수사하고 기소한다.

정치는 사건이고 자기에 대한 반대자는 피의자일 수 있으며 폭로와 주장은 기소이다. 그러나 그는 반항할 수는 있으나 반역자가 되지 못한다. 홍준표가 당선되면 당·정·청이 매끄럽지 못할 것 것이라는 풍문에 몹시 시달렸는데 그런 평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음모나 뒷소리를 하는 데에는 가장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음모는 은밀함과 비밀을 필요로 하는데 그는 온통 까벌리고 들이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반항하는 이단자는 될 수 있지만 반역아는 결코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공격수로서 질주의 괘감과 찰나의 미학은 있으나 쉐도우 모션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공격수는 앞에 골대만 보면된다. 그러나 수비수는 운동장 전체를 볼 수 있어야 된다. 홍준표는 들이대거나 또는 사표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누구에게도 사표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표를 받아야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출마선언문은 서두에 당당한 한나라당을 만들겠습니다로 시작된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서두가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듯이 홍준표의 말처럼 당당한 홍준표가 당당한 한나라당을 만들고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꼭 바란다. 한나라당 전주완산갑 당협위원장 태기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