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학교의 외로운 독백(獨白)
60. 학교의 외로운 독백(獨白)
  • 문창룡
  • 승인 2011.07.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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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를 지나다 목격한 풍경이다. 뉴스나 연속극에서 자주 보아오던 광경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동네에서 기물을 부수었다고 경찰서에 끌려와 담당 경관에게 조서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옆에는 조서를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경관에게 애걸하듯 선처를 호소하고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조서와 상관없이 부순 물건만 원상복구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감옥이라도 갈까봐 그런지 과한 저자세로 경관의 취조에 응하고 있었다. 조심조심 경관의 눈치를 살피는 부모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학생들의 행동이 거칠다. 학교의 물건들이 성한 것이 없을 정도이다. 철 구조물로 튼튼하게 만든 시설조차도 부숴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어른의 힘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시설들이 망가져 버리는 걸 보면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다. 십년 전 만해도 학교 시설을 망가뜨린 학생들은 마치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실수로 유리라도 한 장 깰라치면 부모가 달려와 자식교육을 잘못시켜서 그랬노라고 선생님에게 이해를 구하고 누가 알새라 감쪽같이 유리를 끼워 놓았었다. 부모들의 형편이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랬었다.

교육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학교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지금 필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학교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최근 학교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부모와 교사사이에 불미한 충돌이 일어나면 교사에게 불이익이 간다. 그러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면 사과를 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하며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일이 다반사다. 원인이 어찌되었건 학생들이 수업하는 교실에 부모가 흙발로 들어와 담임의 뺨을 후려쳤던 일도 공중파를 타고 뉴스에 나오기까지 했다. 지각 있는 부모라면 자녀가 그 광경을 더 지켜볼까 봐 얼른 채널을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학부모들의 내심(內心)은 학교에 호의적이지 못하다. 특히 내 아이의 일에서만큼은 학교에 너그럽지 못한 게 요즈음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한 아이가 학교 시설물을 망가뜨렸다. 고의적이었다. 그것이 비록 실수라고 하더라도 교육적으로 훈계를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학교에 나오게 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담당교사가 부모와 대화를 나누던 중 고의성이 있었다고 말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고의성이라는 단어는 경찰이 쓰는 용어인데 이 말을 교사가 쓴 것을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신성한(?)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를 범죄인 취급했다는 이유다. 경찰서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처럼 다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여간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한다. 이건 아니다 싶은 일이 발생해도 묵인해 버리는 교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학교에서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에서 구성원들끼리 갈등과 반목이 성행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시행되는 교육정책들이 학교에 불안정한 기조를 드리워지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학교가 힘들어지는 것은 국가의 큰 손실이다. 학교가 힘든 상황을 말해보지만 그것은 학교의 일이라며 터부시해 버린다. 그래서 학교는 외로운 독백(獨白)을 하고 있다. ‘분명 이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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