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의 연관성
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의 연관성
  • 이동희
  • 승인 2011.06.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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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중국에도 전주(全州)가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주라는 지명이 같을 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한국 전주에 있는 완산, 기린봉, 금산사 등이 중국 전주에도 있으며, 중국에 전주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이 후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937년경이었다. 그래서 후백제 멸망후 그 후예들이 중국으로 들어가 전주를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다.

올해 초 이런 양쪽 전주의 역사적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한 중국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양 지역의 역사적 관련성이 밝혀진다면 이를 토대로 적극적인 우호교류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우석대 조법종교수, 순천향대 박현규교수, 부산외국어대 권덕영교수, 그리고 필자가 연구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최우중학예사가 같이 하였다.

중국 전주현은 광서성에 속해 있는 장족 자치구이다. 중국의 남쪽 계림시 바로 위에 전주현이 위치하고 있다. 계림시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 곳으로 전주현의 상위시이다. 행정상 전주현은 계림시의 관할하에 있다. 중국 전주는 한국 전주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 조사 결과 중국의 전주는 937년(또는 939년) 상원(湘源)이라는 지명에서 개명된 것으로, 무량수불로 받들어지던 고승 전진화상(全眞和尙)을 기리기 위해 ‘전진’의 ‘전’자를 따온 것이었다. 반면에 한국 전주는 757년 한자식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완산에서 개명된 것이다. 양쪽의 전주는 지명이 같을 뿐 역사적 상관성은 없는 셈이다.

완산은 중국의 경우도 한국처럼 시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같으나, 연원은 중국의 경우 명나라 때(15세기 이후) 붙여진 것이며, 한국은 그 훨씬 이전의 일이다. 따라서 상관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중국 완산의 이전 이름이 발우산(鉢盂山)이라는 것이다. 한국 전주의 경우 승암산 자락에 발산(鉢山)이 있다. 둘 다 스님의 바리때를 의미한다.

금산사 경우, 중국 금산사는 명나라말 청나라초, 즉 16, 17세기경에 건립된 사찰이며, 한국 금산사는 그 연원이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양쪽 금산사 건립연원이 현재로서는 천여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상관성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후백제의 유민들이 건립했다면 천여년 후에나 금산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전주와 중국 전주가 역사적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후백제가 936년에 멸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중국 전주가 그 직후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 어떻게 완산, 금산사, 기린봉, 발산 같은 지명이 양쪽에 다 자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 전주가 후삼국시대 인적왕래가 빈번했던 남중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현재로서는 두 지역의 역사적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지만, 두 지역에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숨겨진 역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전주가 중국 전주라는 지명 보다 먼저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한자식 지명들이 중국의 지명을 가져다 썼다고 하는데, 전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적 연관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 전주는 적어도 중국 전주의 지명을 가져다 쓴 것이 아니며, 이런 사실은 한국 전주사람들에게 또 한 측면의 자부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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