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조정에 대한 소감
검·경 수사권조정에 대한 소감
  • 유길종
  • 승인 2011.06.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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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수사권독립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95조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96조는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형식논리적으로는 경찰은 검사의 지휘 없이는 아예 수사를 개시할 수도 없다는 것인데, 이는 대부분의 범죄수사를 검찰의 구체적인 지휘 없이 경찰이 개시하여 진행하고 있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는 검찰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경찰의 모든 수사를 지휘할 수 있고, 경찰은 그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경찰조직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고, 이를 극복하고 독립적인 수사권을 확보한다는 것은 경찰의 오랜 숙원이었다.

지난 20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통과시킨 조정안에 따르면, 우선 ‘사법경찰관리’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96조에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하여 수사를 개시·진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고, 대신에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찰의 지휘를 받고,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하며,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하고 있다.

위 조정안 중 경찰의 수사개시·진행권을 인정한 것은 현실과 법규정의 괴리를 없앤 것이다. 한편으로 사법경찰관에게 수사개시권과 진행권이 있음을 명시하여 사법경찰관이 단순한 수사의 보조자가 아니라 수사의 주체임을 분명히 한 의미는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위와 같은 수사개시·진행권의 명문화만으로는 경찰이 실제로 얻은 것이 별로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에도 경찰이 검찰의 지휘 없이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여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경찰의 수사개시·진행권을 명문화하였다고 해서 경찰이 새롭게 얻은 것은 없는 셈이다.

이에 비하여 조정안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명확히 하고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종래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반대해 온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동안 경찰은 수사권독립 주장의 논거로 대부분의 범죄수사를 경찰이 하고 있다는 점, 경찰의 수사권이 독립되지 아니한 결과 불필요하게 검찰의 이중조사가 이루어져 그만큼 국민에게 불편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 경찰은 독립적인 수사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역량이 강화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왔다.

위 논거 중 앞의 두 가지는 경찰의 수사권독립과 직접적·필연적 관련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범죄수사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하여 검찰의 지휘 없이 수사할 권한을 경찰에 부여할 이유는 될 수 없고, 검찰의 이중조사는 형사소송법상 각 조서의 증거능력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인정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척도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인정해도 국민들의 인권보호에 문제가 없다고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그 동안 경찰의 수사권독립 요구가 번번이 좌절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시기상조론이다. 아직까지는 경찰에게 수사권독립을 인정하기에는 경찰의 역량이 부족하고, 검찰의 지휘가 없을 경우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증대한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러한 우려 때문에 번번이 경찰의 수사권독립 요구는 좌절되어 왔던 것인데, 이번의 수사권조정 과정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우려가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수사권조정에서 검찰의 전반적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직은 경찰조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검찰에 대한 것보다는 낮다는 데 기인한 것이지만, 이러한 국민들의 신뢰나 평가가 불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검중수부 폐지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하여는 회의적 시각이 상존하고 있다. 검사들이 소명의식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에 굴복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면, 경찰보다 검찰이 낫다는 국민들의 평가가 바뀔 날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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